장해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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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으로 풀어가자
  • 승인 1998.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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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화두인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을 지켜보노라면 말이 쉽지 진정한 개혁이 얼마나 힘든지를 절감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편한 인식과 대응방법도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 한 사람을 바꾼다고 해서, 아니면 장치 하나를 만들었다고 해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우리 스스로가 큰 틀 속에서 현안들을 들여다보기 보다 거기에 빠져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제작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나는 그것이 문제를 시스템으로 접근하고 또 해결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PD의 제작 자율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MC 선정이나, 소재 선정에서부터 제작과정의 전반적 부분에서 지금까지는 간부의 의지가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D 개인의 독창적 발상이나 고민은 존중받기 보다 그동안의 관행이나 습관에 의해 저지되기 일쑤였다. 소위 말하는 편성권이나 제작 지시권이란 만능의 칼은 항상 조직이나 상사에 있었다. 그러나 개혁의 시대라는 지금 상사든 부하든 모두에게 절실한 것은 ‘자기 검열’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것이다. 기존의 질서, 기존의 관행, 기존의 체계, 기존의 제작 시스템이 그대로 답습된다면 아니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소재나 주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보다 습관대로 안되는 것으로 스스로 한계지어버린다면 개혁이란 화두는 물건너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제작시스템과 금기와 성역시되었던 소재로부터 벗어나 ‘실험’을 해보자고 시도된 KBS의 개혁실천 프로그램과 그간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러한 우려를 떨쳐버릴수가 없다. 하나의 새로운 모델로서, 새로운 시도로서 사안이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기존의 질서체계나 소재 선정의 한계 등 여전한 자기검열의 틀이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 팀이 기존의 제작질서에 문제점이 있었음을 부각시킨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어느 간부의 말을 인용않더래도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와 있는지에 대한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면 개혁실천팀을 둘러싼 PD사회 내부의 갈등은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기존의 제작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한 새로운 시각과 의지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곧 편성권의 독립이라는 시스템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신문의 편집권의 개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편성권은 그동안 회사의 신성불가침한 권한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그동안 ‘줄긋기=편성’이란 협의의 개념으로 사용된 편성이란 컨셉트는 기획에서 방송 송출과정에 이르는 제작 전반 과정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신문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사명감과 의무를 가진 기자의 자율성에서 기초되지 않으면 사주나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이, 방송 또한 전파라는 국민의 재산을 위임받은 제작자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코 그 공익성과 형평성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편성권의 독립은 제작자율권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생길 갈등과 책임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그것은 평가 시스템 확립으로 풀 수 있다. 지금까지 한 프로그램의 평가는 사장이나 간부 몇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결코 제작자보다 정보가 충분하지도,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도 윗사람에 의해 소재는 기각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제작자들은 점차 의기소침해지거나 나중에는 포기하고 도망가는 현상까지 벌어지곤 했다. 이제 평가 방법이나 기준에 있어서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제작현장의 고인물은 결코 맑아지지도 않을 것이며, 제작자들의 저하된 사기를 북돋울 수도 없을 것이다. 이 두 시스템의 틀에서 개혁실천팀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안을 보면, 제목이나 방송의 형식(생방송인가, 녹화인가), 그리고 방송시간(60분인가, 45분인가)의 문제는 오히려 쉽게 해석되어지고 해결될 수 있다.시스템의 문제는 제작 시스템이나 평가 시스템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입사원 때부터, 아니 몇 년이 지나더라도 한번도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받아보지 못한 PD들을 과연 전문가 집단이라 할 수 있을까. 방송사만큼 사람만들기, 인재키우기, 전문가양성에 소홀한 집단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전면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그동안의 방송제작 노하우가 이론화, 체계화되어야 하며 신입사원부터 연차별 교육 커리큘럼과 제작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뿐인가. 말로만 얘기되는 대PD, 대기자가 현실적 힘을 받으려면 CP 시스템, 전문직제 시스템에 대한 전면 검토와 정비가 시급하다.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되지 않는다. 개혁하려면 새로운 접근방식과 시각이 필요하며, 그것은 곧 시스템이란 컨셉트 정립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손으로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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