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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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찌그러진 현판
  • 승인 1998.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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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그동안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방송현업인들의 목소리를 내고 전문성을 강화하자고 발족한 방송인총연합회의 현판이 떨어졌다. 지난 11일 통일심포지엄 직전에 현판식을 하며 임시로 걸어놓은 것이 그 무게를 못 이긴 탓이다.못을 박아 다시 붙이다보니 현판 한 귀퉁이가 보기 싫을 정도로 찌그러져 있다.저 현판을 어떻게 할 것인가.우리의 표상이자 심벌인데 저대로 흉물스럽게 둘 순 없지 않은가.
|contsmark1|다시 현판을 떼어낸다.금속으로 만든 현판의 무게가 양 팔뚝에 실려온다. 참으로 무겁다.우리 방송인들이 꿈꾸고, 헤쳐나가야 할 현실과 삶의 무게를 상징하듯이.갑자기 묘한 감정에 이어 분노가 치밀었다.언제한번 방송인 스스로 목소리 낼 수 있었던가. 전문인으로 제대로 된 교육한번, 대접한번 받아본적이 있었던가.그 속에서 체제와 조직에 반항하는 것은 금기였고 방송이 당연히 해야 할 것들도 제지당했다.순종이 미덕이었고 개성은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로 길들여져 왔다.‘맞아, 그건 안되는 것이야. 언감생심 꿈이라도 꾸면 안돼!’ 그 자기검열과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작업한번 해보자는 제작자들의 뜻을 윗사람들은 과연 가슴으로 이해할까. 한자리 차지한 사람들의 독선과 권위, 그리고 서릿발같은 조직논리와 명령에서 우리는 언제쯤 자유스러워져 신명나게 제작에 임할 수 있을까.우리는 과연 역사가 발전한다는 믿음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contsmark2|찌그러진 부분을 망치로 두드려 편다.아까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다시 현판을 걸고 그 앞에서 바라다본다.그러나 찌그러진 부분은 여전히 일그러진 채로 남아 눈에 거슬린다.어떻게 할까. 다시 고쳐봐? 아니다. 그냥 두자. 망치로 두드린다고 이미 찌그러진 부분이 원상회복 될 리 없다. 현판 달기에 급급해 그 현판의 무게와 적절량의 하중 받침을 치밀하게 계산해 내지 못한 우리의 원죄가 씻어질 리도 없다. 오히려 그 상처를 바라다보며 우리의 표상이자 심벌이 받은 충격과 좌절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처절하게 확인하고, 우리에게 짐지워진 삶의 무게를 다시 한번 절감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contsmark3|누군가 그 현판을 만든 제작자에게 갖고 가 온갖 테크닉을 동원하여 흉터하나없이 치장하려 할지 모른다. 아니 아예 현판자체를 바꾸려할지 모른다. 더 나은 디자인과 재료로 더 많은 돈을 들여 지금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그러나 치장을 하려해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다시 제작하고 그 상처난 현판을 쓰레기통에 처박는다고 해도 그 현판이 받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버려진 현판은 어느 쓰레기하치장에서 내내 눈물짓고 있을 것이다. 떨어져 내린 현판이 받은 충격과 흔적, 상처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잊어버리려해도 잊어버릴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contsmark4|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따갑다. 작업하면서는 몰랐는데 한 손에는 살점이 떨어져나가있고, 긁힌 다른 팔뚝엔 피가 굳어있다. 왈칵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 그러나 울어서는 안된다. 상처뿐인 현판이라도 그 현판은 여전히 우리의 표상이자 상징이며, 우리들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현판은 아직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걸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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