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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국민(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님의 음악 수업은 특별했다. 허리띠를 비집고 나온 뱃살 덕택에 뚝배기라는 별명을 지녔던 그 선생님의 음악 시간은 항상 목 풀기부터 시작된다. 콧물도 덜 마른 예순 명의 아이들은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풍금 소리에 맞춰 ‘다람쥐가 올라간다, 다람쥐가 내려온다’를 외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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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열대번은 반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어지는 순서는 언제나 변함없는 레퍼토리, 어부가였다. 이 콘티는 6학년 첫 음악시간부터 졸업 직전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동해바다, 푸른물결’로 시작되는 어부가 역시 예닐곱번은 불러야 한다. 땡볕이 뜨거운 바다로 출항하는 어부의 심정을 제대로 알려면 그 정도는 반복해야 한다는 게 뚝배기 선생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13살 아이들에게는 지독히도 재미없는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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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에 올라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일주일에 겨우 한 시간 배정되었던 음악시간도 학과보충이니 뭐니 해서 영어나 수학으로 대체되기 일쑤였다. 그나마 가끔 열린 음악시간도 번호 끝자리별로 바꿔가면서 불러댄 합창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12년 학창시절에 만져본 악기라고는 리코더,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가 전부. 교과서에는 각종 악기에 대한 소개가 즐비했건만 가난한 시절의 우리들에겐 몸에 달린 악기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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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처럼 어슬렁거렸던 대학 때는 좀 달랐다. 술이라도 안 마시는 날엔 자취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기타라도 둥당거릴 수 있었다. 그 때는 ‘음, 그래 노래만이 음악의 전부는 아니야’라며 에릭 클랩톤을 5배속정도는 느리게 연주해도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러다 금세 군대로 끌려가 멸공의 횃불만 몇 천번을 불러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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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청춘을 보내고 나니 억울하세요?’라고 물으면 글쎄 꼭 그런 건 아니다. tv에서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도 그럭저럭 볼만했고, 약간의 퍼포먼스만 곁들이면 역시 고래고래 노래방이 술자리의 깔끔한 마침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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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사상을 가진 내가 지난 편성 때는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공연 방송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사옥 1층을 개조해 음악 전문 공연장을 마련하고 그 곳에서 매일 펼쳐지는 공연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기획을 하면서 동료 pd들과 자문을 맡은 음악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끊임없는 토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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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장이 무엇을 보여줘야 하고, 이 프로그램이 무엇을 지향해야할까. 고민 끝에 스스로 얻은 결론은 ‘한국 대중음악의 건강성 회복’이라는 제법 거창한 캐치프레이즈였다. 한국 대중음악이 얼마나 병들어있는지 감히 진단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음악계에서 몇해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문제였기에 도전해 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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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공연장을 열고 프로그램을 제작한 지 이제 석달이 지나가고 있다. 대니 정, 한충완, 양방언, 김목경 씨 등 벌써 수많은 뮤지션들이 공연장을 다녀갔다. 그동안 공연장 한켠에서, 혹은 부조의 모니터 앞에서 그들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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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곳에는 새로운 원더풀 월드가 존재하고 있었다. 건강을 회복해야 할 것은 정작 우리의 음악이 아니라 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서른 다섯해 동안 지독히도 편식을 해온 내가 병들어 있었다. 눈만 조금 돌렸더라면 훨씬 더 풍요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게 누구 탓인가? 뚝배기 선생 탓인가, 악 쓰라고 고함치던 훈련소 조교 탓인가?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채겠지만 결국 방송 책임이다. ‘당신, 너무 편식이 심했어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이것도 한 번 맛보실래요?’라며 친절히 메뉴판을 펼쳐 보이는 프로그램이 너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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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6학년 음악시간의 다람쥐와 어부가처럼 우리의 음악 프로그램은 항상 같은 얼굴에 같은 음악만 내밀었다. ‘처음에는 맛이 좀 쓰더라도 천천히 음미해보세요. 깊은 맛이 우러나올 겁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금은 더 친절한 안내를 곁들인 다면 글쎄, 시청자들도 하나 둘 숟가락을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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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야 군가와 건전가요만 강요당했던 우리 30, 40대도 조금은 위로를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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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 ebs 참여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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