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시평] 은행과 PEF가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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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반기 푸르덴셜의 현대투신 인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계기로 외국자본의 금융장악에 대한 비판이 처음으로 여론화되고 있다. 그리고 민영화를 앞둔 우리금융과 한투, 대투마저도 외자에 넘어갈 경우 한국은 금융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불붙은 것이 외국 금융자본에 맞설 ‘대항마’ 논의였다.

이러한 ‘대항마’ 맥락에서 재경부가 부리나케 발표한 구상이 사모주식펀드(private equity fund: pef)이다. 한마디로 론스타나 카알라일 같은 사모주식펀드를 우리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현재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입법예고 중인데 재경부에 따르면 사모주식펀드는 단지 대항마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단기부동화되고 있는 400조원의 국내여유자본을 생산적 투자로 연결시키는 주요 채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뮤추얼 펀드와 같은 공모펀드가 일반인을 상대로 널리 투자자를 모집하고 또한 투자안정성을 위해 분산투자원칙을 지킨다면 사모주식펀드는 소수의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모아 구조조정 기업 혹은 벤처기업과 같은 고위험 사업에 집중투자하여 고수익을 올린다. 사모주식펀드가 처음으로 발전한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탈과 구조조정펀드(buyout funds)가 대표적인 사모주식펀드이다. 한국의 경우 이미 벤처캐피탈이 존재해온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새로 입안되는 사모주식펀드 구상의 핵심은 역시 구조조정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구조조정 혹은 경영권 인수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먼저 중국요인의 등장, 내수부진, 여타 자금난 등으로 인해 성장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일시적 경영난에 빠져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있다. 그리고 또한 지난 6년간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대우종합기계, 대우조선 등 많은 워크아웃 졸업기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사모주식펀드 형태의 구조조정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어려움에 빠진 거래 중소기업들의 구조조정과 회생을 돕기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사모주식펀드를 구상중이며 신한은행, 국민은행도 비슷한 구상을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은행업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진전인데, 왜냐하면 97년 환란 이후 손쉬운 가계대출에만 집중하던 은행권이 이제 이런 형태로 기업과의 장기적 거래관계를 복원함으로써 생산적이고 책임지는 투자자 역할로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의 틀을 활용해 은행과 사모주식펀드가 결합될 경우 그 역할은 더 증진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은행을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를) 과연 사모주식펀드의 지배에 맡겨도 되느냐이다. 이것은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한 ‘이헌재 펀드’ 논란에서 시작되어 최근에는 재벌이 사모주식펀드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해 우리금융을 인수할 경우 ‘산업자본-금융자본 분리’ 원칙이 폐기된다는 논란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카알라일 혹은 론스타 펀드의 뒤에 어떤 미국계 ‘산업자본’이 주요투자자로서 숨어 있는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국재벌의 사모주식펀드 투자만을 문제 삼는 일부의 태도는 또 다시 “국내자본 역차별”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근본적인 문제는 재벌이 아니라 사모주식펀드의 은행인수 자체이며, 은행법은 명백하게 사모주식펀드와 같은 비금융주력자의 은행(혹은 금융지주회사) 인수를 금지하고 있다.

그것이 미국계건 한국계건, 혹은 그 뒤에 재벌이 있건 관계없이, 론스타와 카알라일과 같은 사모주식펀드는 시중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이 재확인되어야 한다. 그만큼 은행은 국민경제의 사활을 좌우하는 중요한 준공공재이며 따라서 필요하다면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연기하고 5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국민주 형태로 분산된 민영화를 추진하여야 한다. 이것이 사모주식펀드 제도도 살리고 은행도 살리는 길이다.


정승일/ 국민대 경제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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