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비평 SBS [주병진 데이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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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비평 SBS [주병진 데이트라인]
허약한 풍자, 썰렁한 논평
풍자의 과감성과 심층성 획득해야
  • 승인 1998.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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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주병진이 돌아왔다. 오래 전 자니윤이 미국 상표만으로도 꽤 각광을 받던 시절,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서 한국에는 주병진이 있음을 깨우쳐 주었던 그이다. 그렇게 스타가 되기 이전의 주병진에 대한 두 개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80년대 초 [젊음의 행진] 막간에 무대에 올라 손가락으로 입술을 퉁기며 병마개 따는 소리를 내던 장면이고, 또 하나는 그보다 조금 뒤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맡아 산신령 복장으로 “신이시여”를 외치며 연신 물벼락을 맞던 장면이다. 이때는 주병진도 다른 코미디언들이 그렇듯이 스스로를 낮추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코미디 자체가 오랜 주눅들림의 세월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일밤]이라는 틀을 통해서 말의 공격성이 코미디의 핵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화려하게 날아올랐고, 코미디도 그와 함께 자기 억제의 굴레를 벗을 수 있었다. 그 뒤 주병진은 토크쇼의 대표 주자가 되었지만 간격을 두고 두 번의 [주병진 쇼]를 맡았을 뿐, 엄격한 자기 관리를 보여줌으로써 또다른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3년만에 다시 돌아왔다.그런데 이번에는 연예 토크가 아니다. 물론 앞서 두 번의 토크쇼에서도 연예인 뿐 아니라 정치인들을 초청했고, 환경미화원이나 지피족과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중심은 어디까지나 연예 오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보와 보도를 중심에 두고 있다. 작은 차이일 수 있지만 발상의 전환이란 측면에서 혁신적이다. 담당 pd만도 다섯 명일 정도로 방송사에서 역점을 두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바로 이런 발상의 전환이란 측면에서 기대가 컸다. 주병진의 공격적인 언어가 이제 연예계의 틀을 넘어 바야흐로 사회로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도석에 주병진을 앉힌 것은 주어진 원고를 읽기만 하라는 뜻이 아니지 않겠는가.그런데 현재로선 대단히 실망스럽다. 물론 프로그램에 제작진의 정성이 배어 있음은 느껴진다. 집중 분석 가운데 황소개구리, 도심의 벌떼, 식인상어 등은 참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고, 홈리스 하루 체험이나 거지 체험, 전화방 등 진행자가 직접 참여하는 현장 르포는 과감한 시간 투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정성과 투자가 그만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 까닭은 바로 진행자가 주병진이기 때문이다. 그는 풍자에 관한 한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잠입 르포에는 그의 높은 지명도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가령 전화방 통화 여성과의 직접 대면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은폐시킨 거지 체험은 굳이 주병진이 나서지 않았어도 된다. 황소 개구리 사냥에 직접 나선 것은 다만 ‘스타가 욕봤다’는 갸륵함 이상을 느끼기 어려웠다.주병진의 강점은 대화의 가닥을 잡아가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에 있다. 그는 마구 흐트러진 말들을 한 순간 다잡을 수 있다. 어떻게? 그 발언자들을 면박 줌으로써. 반대로 상투적인 대화에 변화와 일탈을 기하기도 한다. 어떻게? 정상적인 구문과 사고 방식을 돌려 침으로써. 가령 월드컵 한국-멕시코 전을 앞두고 경기 결과 예측을 전화로 응모 받을 때 그런 주병진류 대화법이 잘 나타났다. 선택지는 1번 한국 승리, 2번 멕시코 승리, 3번 무승부였는데, 동료 진행자가 “응모자들이 모두 1번을 선택할텐데 다른 번호는 왜 해 놨을까요”하고 나름대로 재치를 발휘했지만, 주병진에 의해 즉각 되치기 당했다. “왜요, 멕시코 분들도 계시잖아요.” 필시 대본에 없는 순발력이었으리라.그런데 과거 [주병진 쇼]의 경우, 그의 그런 송곳 되치기 장기가 정치인들과의 대화에서 현저하게 약화되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스스로의 몸조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방송사의 몸조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이번 [데이트라인]은 프로그램 성격상 시사 풍자가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거기에 크게 못 미친다. 공해 관련 보도에 덧붙여 “시화호 물에 밥 말아 먹게 하고…”식의 논평은 그 발상도 따분할 뿐더러 주병진의 호흡마저 엉켜 더욱 썰렁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호흡이야 차차 안정되어 노련함을 갖춰갈테지만, 시사 풍자의 격은 어떻게 갖출 것인가. 아직은 주병진 한 사람을 보려는 시청 동기 덕택에 근근히 지탱해 가겠지만, 풍자의 지평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중도 하차의 당사자는 설수진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 전체가 될지도 모른다.이것은 프로그램의 핵심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진작 파일럿 프로그램 형태로 시험을 거치는 것이 어땠을까 싶다. 즉, 보조 진행자의 미숙함이 뒤늦게 발견된 것도 준비 기간의 잘못으로 지적될 수 있고, 현재로서는 다만 시의성 있는 보도 내용을 수용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생방송의 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현장 연결 방안 같은 것을 더 궁리한다든지, 별채 대담의 지루함을 보상하기 위해서 방자(kicker) 역할을 도입한다든지, 시사 풍자의 수위를 어느 선까지 높일 수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던져 본다든지 하는 등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른바 평가전을 몇 차례 가져 보는 것이 좋았으리라고 본다.또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도 토요일과 일요일의 구분이 느껴지지 않고, 보도 아이템들이 뉴스의 재탕에 머물 뿐 주간 매거진으로서의 심층성으로 연결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다만 프로그램의 성격을 연예 토크쇼와 구분 짓기 위한 임시 방편의 포장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그래서 이제 [주병진 데이트 라인]에 제언을 하자면,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병진의 특성을 적극 활용하거나, 아니면 pd가 적극 개입함으로써 기획에 무게를 두거나 해야 한다. 주병진의 특성을 살리려면 지나친 격식과 대본에 의한 규정보다는 애드립을 통한 일탈의 여지를 더 주어야 한다. 이때 시사성과 정보성은 현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무난한 토크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싫다면 주간 시사 매거진으로서의 심층성을 띠어야 할 것이다. 다만 잡다한 뉴스의 재탕과 썰렁한 논평을 나열하기보다 소수 아이템에 집중한 과감한 풍자로 가야 한다. 현장 잠입에 들이는 공을 말의 공격성 확립 쪽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같은 사회문제를 다루더라도 주병진에게는 무력한 “쯧쯧쯧”쪽 보다 당찬 “낄낄댐”쪽이 더 잘 어울리고 또,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pd연합회 방송비평모임정리 : 손병우(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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