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의 눈]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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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홍대에는 달빛요정이 삽니다. 보신 적 있으세요? 듣도 보도 못했다고요. 아. 네…. 요정이니까. 예쁘냐고요? 아뇨. 천만에. 안타깝게도 그는 수염 덥수룩한 남자인걸요. ‘미래소년 코난’ 기억하시죠? 거기에 나온 포비 닮았어요. 잠깐만, cd 좀 틀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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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처음 나간 동창회/ 똑똑하던 반장놈은 서울대를 나온 오입쟁이가 되었고/ 예쁘던 내 짝꿍은 돈에 팔려 대머리 아저씨랑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뭐 잘났나…스끼다시 내인생/ 스포츠신문같은 나의 노래…(노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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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노래 어때요? 가사가 도발적이라구요? 좀 그렇죠. 그래서 방송금지 먹었죠. 근데 아까 얘기한 달빛요정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상관있죠. 이 노래 ‘스끼다시 내인생’을 부른 좀 덜 떨어진 인간이 자칭 달빛요정이니까요. 저도 얼마 전 아는 후배에게 달빛요정이라는 존재를 처음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음악을 하는 놈이길래 자기이름을 달빛요정이라고 떡하니 뚝심 좋게 지을 수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세상에. 포비가 달빛요정이라고 이름표를 달고 다니니까요. 맥주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겠습니다. 괜찮죠? 달빛요정의 최고 히트작 ‘절룩거리네’도 한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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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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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난 그 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절룩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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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헌날 사랑타령/ 나이값도 못하는 게/ 골방 속에 쳐 박혀/ 뚱땅땅 빠바빠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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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도 나를 원치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 절룩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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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처럼 달빛요정이 사는 곳은 홍대 근처 지하단칸방이라고 하네요. 그 곳에서 혼자서 뚱땅땅 빠바빠빠하면서 앨범 만들고 포장하고 배송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러다가 모 방송사 신모 dj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사람들에게 조금 알려졌구요. 보기좋게 선심써서 말해 세계최초 지하생활자 원맨밴드 가내수공업 앨범제작방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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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맨밴드 이름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고 지은 것은 끝없이 패전을 거듭했던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빗맞은 텍사스성 안타라도 찾아올 것이라는 작은 소망을 반영한 거라고 하네요. 하하, 우습죠. 그런데 참 묘한 게 있어요. 참 음울하고 어두운 지하생활자의 수기 같은 이 노래들이 너무 좋은 거예요. 마치 역전홈런처럼 통쾌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물론, 시대는 변했고 우리도 변했죠. 깃발 내린 지 이미 오래고 서른을 넘어버린 저에게도 순수의 시대는 남아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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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룩거리네’라는 후렴구, 가슴 찡하더라구요. 어차피 우리들 살아간다는 게 어찌보면 다 첫사랑의 연속 아니겠어요. 만나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헤어지고 또 그리워지고. 그러다가 또 만나고.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이 세상이지요. 그래서 낯선 길에서 가끔씩은 절룩거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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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이 시간만 되면 막히는 이 길/ 난 그동안 군대도 다녀왔고/ 내가 태어났을 때보다/ 짜장면은 열배나 비싸졌다는데/ 짬통같은 버스가 뒤굴뒤굴 굴러다니는 이 길은/ 보기좋게 선심써서 두 배쯤은 좋아졌다/ 두 배쯤은 넓어졌다/ 나머지는 어디에 흘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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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타고 집에 간다’라는 노래예요. 박노해 시인의 시처럼 통렬하지는 않지만, 달빛요정의 읊조림은 단순한 투덜거림이 아닙니다. 백수같은 놈팽이, 사회부적응자가 부르는 괴성으로 생각하신다면 대단한 착각입니다. 소시민의 일상 속에서 사회를 향한 건강한 시선을 지키며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아시잖아요. 맞아요. 달빛요정의 홈페이지를 보면 삼미슈퍼스타즈의 로고가 떠있어요. 프로야구 원년 꼴찌 팀이었죠. 그가 왜 그 만년꼴찌 팀을 기억해낸 것일까요. 그리고 그 곳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였을까요? 조금 취기가 오르네요. 안주 하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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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이름도 ‘록은 결코 죽지 않는다’(www.rockwillneverdie.com)입니다. 달빛요정이란 사람. 이제 좀 알듯 말듯 하시죠? ‘엇갈림’ ‘슬픔은 나의 힘’ ‘행운아’ ‘쓸쓸한 서울, 노래’ 같은 노래도 한 번 들어보세요. 예? 제가 pd니까 달빛요정 한번 불러 콘서트 해보면 어떠냐구요? 하하. 생각해봤죠. 근데 달빛요정은 그렇게 쉽게 쉽게 불러내면 안되죠. 팅커벨처럼 빛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전 방송금지곡이 있는 달빛요정이 훨씬 좋으니까요. 이런, 술 다 마셔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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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홍대 갈 일이 있으면 361번 버스나 마을버스를 타볼까 합니다. 그러다가 아주 운좋게 기타 하나 들고 있는 사내를 발견하면 술 한잔 사줄랍니다. 저의 잃어버린 순수를 되찾아준 대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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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호 / ebs 참여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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