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 TJB 창사다큐 [장(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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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場)에서 배우는 두세가지 것들
김래호
(TJB 제작부)
  • 승인 1998.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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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묶어 논 돈은 없지… 농사는 하나도 안 짓고 순전히 이걸로 먹고살고 아이들 가르친 겨. 한 30년 했구먼….”전국 10대 시장(市長) 중의 하나였다는 충남 예산의 5일장. 일정한 간격으로 “뻥이요!”를 외쳐대던 일흔 네 살의 뻥튀기 장사꾼. 메마른 몸피에 눌러쓴 모자 차양 끝의 휑한 눈매가 전문장꾼은 아닐 성싶었다. 그러나 설탕가루를 뿌리고 열받은 주입구를 열어 제치는 손길은 너무나 쟀다. 부인은 콩강정을 만들고 포장하느라 바쁘기만 했다.“옛날에는 좋았지 경기가. 콩이나 옥수수, 밀, 흰떡, 수수… 못 튀기는 게 없었어. 그나저나 이제 장은 끝난 겨. 어디 장이 장같아야지…. 이게 채소전이지 장인감?”기실, 장은 없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장터 같은 공간. 사람들이 장터를 가득 메우고, 온갖 상품이 거래되고, 소머리국밥이 끓어 넘치고, 해거름 선술집이 북적대는 우리의 장. 이제 남새나 산나물이 품목의 주종으로 장차가 날라온 수산물과 의복류가 그나마 구색을 갖출 뿐이다. 쇠전이 옹기전은 이미 오래 전에 폐쇄되었고 곡물전 역시 서질 않는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장. 그 장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과연 imf 구제금융시대에 장은 의미가 있을 것인가? 실업률이 급증하고 노숙자들이 등장하고 전례없는 자살사태가 벌어지는, 부모와 자식이 생이별하는 참으로 암담한 상실의 시대에 장은 왜 복원되어야 하는가. 총량적 성장주의를 버리고 분배의 정의를 통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세계관은 무엇인가?[장]의 기획의도는 그랬다.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는 한 방식인 자본주의 시각에서 장을 평가해보자는 것이었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노예제사회로, 또한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발전한 역사 속에서 장을 짚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 것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연구를 프로그램화하는 작업이 많았다. 장 역시 우리의 문화를 옹골차게 간직한 공간으로 중요한 소재가 되어왔다. 그러나 국가기반의 붕괴마저 우려된다는 지식인들의 뒤늦은 장탄식이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서정적인 장은 가치가 없어 보였다. 차분하게 내재적 자본주의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 해온 장을 살펴보자는 생각이었다. 막상 그렇게 열린 공간이었던 장이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소장학자를 중심으로 조선 중기 장의 형성과정과 상인층에 대한 성과물은 축적되어 있었다.문제는 사진이 아닌 비디오 자료였다. 장옥이 늘어서고 난전이 벌어진 장터에 북적대는 인파의 아우성이 넘쳐나는 역동적인 자료, 프롤로그에 제시돼 시청자를 온전했던 장터로 끌어들이는 자료. 다행으로 독립기념관에서 u-matic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함께 막이 올랐던 남사당패놀이 그림도 햇빛을 볼 수 있었다.충남은 그 지리적 위치로 일찍이 중국과의 해상로가 개척되고 교역이 시작된 곳이었다. 그러나 현대화 과정에서는 역대정권의 지역 차별화정책에 밀려 소외되었다. 산업화·도시화가 더디게 진행된 것인데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에서 비교적 전통이 살아 있고 재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시장의 경우 금산의 인삼장을 비롯한 한산 모시장, 광천의 우시장은 지금도 전국의 상인들이 몰려들고 거래액수도 대단한 실정이다. 정기 시장이 퇴조하는 가운데 오히려 전문시장은 번창해 지역경제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강경은 조선 후기의 영화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조선의 3대 시장 중의 하나였던 강경. 금강 하구의 강경포는 호남평야의 농산물과 서해의 수산물이 모이고 흩어지는 집하지였다. 소위 포구 주인들은 상권을 장악하고 자본가로 성장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지방아문을 비롯한 중앙의 궁방과 조정의 세금수탈이 과도하게 자행되자 인근의 작은 포구로 옮겨갔다. 대상으로 성장해 일제의 독점자본과 맞설 민족자본이 그렇게 와해되었다.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관료주도하의 관치금융은 시대를 넘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지금의 금융·외환위기는 시장기능을 무시한 개발독재식 성장 체제가 빚어낸 사태이다.강경이나 전문시장이 장의 통시성이라면 보부상은 공시성을 갖는다. 보자기나 지게로 상품을 날라 장과 장을 오가며 팔았던 보부상들. 홍천이나 예산지역에는 보부상을 기리는 제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그들은 엄격한 상도의를 내세워 물건을 강매한 자는 볼기 30대로 다스리는 체형도 시행하였다. 조정이나 관청에 물건을 대던 시전의 상인들은 금난전권을 악용, 사상(私商)의 성장을 억제했다. 그러나 잉여농산물이 물물교환 형식으로 거래되던 장이 갈수록 확산, 17세기초는 전국적으로 1천여개소에 이른다. 결국 금난전권은 폐지되고 보부상들은 새로운 상인층으로 성장해 나간다.사실 대전방송 창사 3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장]은 처음에는 60분 2부작으로 기획되었다. 1부는 조선의 해운업과 포구상업 발달과정을, 2부는 상인층의 성장을 통한 자본의 축적과정을 각각 다룰 참이었다. 결국 중국과 일본의 장에 대한 취재가 축소되면서 60분 단회물로 축소 제작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프로그램이 다소 설익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되었다. 좀더 정제해 ‘별쇄본’같은 작품을 빼냈어야 했는데 장과 상인이 뒤엉킨 ‘단행본’으로 그쳤다. 물론 장 자체가 워낙 많은 의미를 내포한 다면체 같은 생물(生物)이지만….인천방송(5월 26일 밤 10:00∼11:00 방송) 덕분에 전국에서 전화를 많이 받았다. 관치금융과 과점적 재벌체제, 낙후된 경제시스템이 빚어낸 환란시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격려였다.땅이 전부였던 봉건제 조선사회. 장이 열리고 본격적인 화폐가 유통되면서 상공업의 발달을 불러왔던 장터. 장에 기대어 숨 졸이고 살았던 장돌뱅이들. 일제의 독점자본에 정상적인 발전을 저지당했던 식민시대의 장. 전통문화의 보전과 계승 그리고 반제국주의적 민족해방운동이었던 3·1운동의 장터시위. 이렇듯 장은 굴곡진 백성들의 삶이, 한국의 자본주의가 담겨져 있다. 장을 곱씹어 새로운 경제관과 세계관을 세우는 것은 시대적 과제이다. 장에서 배우는 두세가지 바로 그것이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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