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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행진’을 위하여

|contsmark0|87년 해체를 선언했던 신화적인 록 그룹 ‘들국화’가 지난 5일에서 7일까지 여의도 kbs홀에서 그들의 재결합을 알리는 공연을 가졌다. 공연이 끝나고 연합회 사무처장 박종성 pd가 들국화의 리더 전인권을 만나 힘든 때에 귀환을 시도한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편집자 주
|contsmark1|…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입대해서였다. 밤마다 꿈을 꾸었다. 부모님, 친구들, 강의실, 학교앞 다방…. 추억으로 포괄할 수 있는 모든 것. 그것들로 채워진 꿈은 포근했다. 따뜻한 물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상소리에 눈을 뜨는 게 너무 싫었다.들·국·화 - 10년만의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사자처럼 포효했고 그 소리는 공연장 내부를 놀라운 추억의 힘으로 행진했다. 그 노래들을 따라 지나온 시간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모든 게 현실보다 친숙했다. 훈련소에서 꾸었던 그 꿈들처럼.
|contsmark2|“화가 나요.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정말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모두들 어렵게 고생했는데 다시 가난해지고 그것 때문에 무기력해진 모습들, 이 모든 현실이. 그래서 힘을 주고 싶었죠. 강하고 씩씩하게 살자고.” 공연 후에 쉬고 있는 록 그룹 들국화의 리더 전인권을 그가 사는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노래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조심스럽고 다소 어눌한 어조로 그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살아온 시간, 노래를 처음 시작하고, 인기를 얻고, 감옥에도 가고, 대중 앞에서 잠시 떠나있어도 보고, 다시 돌아와 노래 부르고, 돌고 돌고 돌아온 그의 삶에 대해. 그러면서 언뜻 언뜻 그의 삶과 노래가 강퍅하고 매서운 현실에 갇히고, 마모 당하는 꿈 같은 것이었음을 내비쳤다.“노래 부를 때 어떤 강렬한 것을 표현하고 싶어요. 행동이라고 해도 되고 힘이라고 해도 되는 건데… 그게 꼭 정치적인 말고, 돈암동 골목에 사는 애들의 분노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것도 힘이 아니겠어요.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힘.” 얘기를 하다보니 ‘분노’만 말하게 된다며 그는 아이처럼 웃었다. 그러나 무수한 분노들이 총탄처럼 날아가 박히거나 튕겨 나오는 벽 아래에 그들의 노래가 자리해 왔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들의 재결합 공연 제목은 ‘그 곳이 비상구이다’ 였다. 장소는 30대가 가장 선호한다는 kbs홀. 의도가 분명하지 않은가. imf시대에 넋이 다 나간 불행한 father들은 공연 내내 몸을 흔들었다. 혈관 깊이 잠복해 있던 20대의 날들이, 80년대의 분노와 힘이 공연장을 한없이 팽창시켰다. 눈물겨워라. 추억의 연대(連帶)여.
|contsmark3|“노래 쓸 때 거창하게 사회적 의식이니 하는 것 일부러 담으려고 해본 적 없고 또 잘 알지도 못해요. 그냥 느낌대로 쓰고 노래 부르죠. 저는 그야말로 대중가수예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틀즈나 레드 제플린같이 음악적으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뮤지션들입니다. 인생을 음악에 던졌다, 그래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 항상 그렇게 생각하죠. 공연할 때 저는 거기에 온 관객들의 인생 중 2시간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노래 불러요.” 그는 공연 내내 절규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열심히 노래했다. 예의 고음은 날카로움을 넘어 중년의 나이가 주는 무게까지 갖추고 있었다. 절창 ‘사랑한 후에’를 들어보자.…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있나…이 아름다운 노랫말이 그의 격정적인 창법과 결합하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다 통렬하고 장려한 광채를 뿜는다. 신대철의 명시 ‘처형’의 울림에 견줄만하다.…저 산, 노을이 비치고 온 몸에 금이 가요. 사방에서 노을이 떠요. 살고 싶어요. 사람이 죽으면 노을에 묻히나요…그의 노래에서 폭발하는 저 초고밀도 정서의 핵은 무엇인지.
|contsmark4|“원래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려고 했는데 반대가 심했어요. 화가 나서 노래를 시작했죠. 노래만 하고 싶은데 쓸데없이 학교에서 수학이니 뭐니 하라니까 또 화가 났죠. 그래서 고등학교도 중간에 그만 두었죠. 노래를 시작해서도 소리 크게 지른다고 업소에서 쫓겨났어요. 화가 막 나더라구요. 저는 말이죠 그런 게 좋습니다. 이를테면 길을 걷다가 갑자기 막 뜁니다. 그러다 다시 멈춰서고 다시 걸어가지요. 그냥 걷기만 하는 것 보단 재미있지 않습니까. 한 번 해보세요.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고 싶은데 제한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또 화가 나요.” 들국화 재결합의 직접적인 매개가 되었던 것은 옛 멤버였던 허성욱의 죽음이었다. 키보드 주자이자 전인권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는 작년 11월 요양차 가 있던 캐나다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contsmark5|“처음에 성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멤버들 모두 충격을 받았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지요. 그렇게 한달 쯤 지나니까 그제서야 슬퍼져요.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뭔가 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고 또 주변을 둘러보니까 다들 그 imf 때문에 너무 고생들 하더라구요.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그의 노래의 두 줄기인 분노와 슬픔은 더 심화되었다.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리멸렬하게 거리를 헤매는 실직자들, 노숙자들, 썩은 짚단처럼 밑동에서부터 잘려 나가는 희망들. 들국화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도 ‘꽃다지’도 아니다. 전인권은 대학에 가본 적도 운동권 활동을 한 적도 없다. 그는 카페에서 직업적으로 노래 부른다. 한참 들국화가 ‘떴을’때에도 경제적으로는 크게 윤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서민이다. 누가 주입시키지 않더라도 한 시대의 고통은 항상 그의 삶을 관통한다. 그래서 그는 노래한다. 상처 입은 맹수처럼 울부짖는다.(그와 얘기하던 중 내가 그의 노래를 사자후라고 표현했더니 그는 대단히 공손하게 사자후가 뭐냐고 물었다. 그 뜻을 알려주자 그는 아주 좋아했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라이온 킹이라며 정말 사자(?)같이 껄껄 웃었다)“이번 공연을 하면서 느낀 건데요. 노래방 덕분인지 관객들의 음악 수준이 높아졌어요. 노래 잘 따라 부르고 박자 감각이 아주 좋아졌더라구요.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연장은 운동경기장이나 체육관 같은 데예요. 예전에는 그런 곳에서 하루 4만명까지 관객을 모은 적도 있었는데…. 다시 그런데서 이렇게 수준 높아진 관객들과 같이 소리 지르고 싶죠.” 어떤 예술작품에서 속기(俗氣)가 느껴지지 않을 때 그 작품을 최고로 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만일 사람을 그런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그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운명처럼 만났다가 헤어지고 소문되고 아쉬워지고 헤매이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계획하고…돌고 돌고 돌고…들국화는 그들의 노래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오는 7월부터 다시 콘서트를 시작한다고 했다. 여전히 방송보다는 공연장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공연을 통해서도 돈을 벌 수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고 또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현재 한국 록의 음악적 수준, 의식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contsmark6|“요번 공연에서는 누구나 잘 아는 옛날 곡들을 불렀어요. 성욱이를 추모한다는 뜻도 있었고 옛날 관객들과 같이 호흡을 함으로서 예전의 우리 모두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하는 만남이었으니까요.” 그는 3시간동안 지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는 중에 그의 표정이 가장 밝아졌을 때는 그의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8살 먹은 아들이 아주 음악을 좋아하고 똑똑하고 반듯하다고 했다. 그의 야성적으로 굴곡진 얼굴이 대학생 아들 자랑하는 농부의 그것처럼 보였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리라.추억은 해후의 순간에 가장 밝은 빛을 낸다. 누구의 말처럼 추억은 경멸할 만한 것이다. 그것에 먹히는 한은. 그러나 가볍게 내리는 비처럼 머리를 두드려 깨우는 추억은 아름답다. 회상의 공연은 끝났다. 눈을 뜨고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오늘 주가 300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려운 시절이다. 강풍이 불고 있다.발레리처럼 말하고 싶다.…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다시 들국화처럼 외치고 싶다.…바람이 분다. ‘행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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