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의 눈] 소수자와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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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의 눈] 소수자와 방송
  • 홍경수/ KBS 방송문화연구소
  • 승인 2004.08.1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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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오래된 불만은 방송이 메인스트림만을 좇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의 주류 만들기 바람이다. 누군가가 바람을 만들었다 싶으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만들어진 바람에 뒷심을 보태는 데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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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웰빙 열풍으로 언론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단어에는 웰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웰빙 푸드, 웰빙 휴가, 웰빙 파티, 웰빙 쇼핑, 웰빙 다이어트, 웰빙 인테리어, 웰빙 운동 등…. 웰빙이라는 단어의 끊임없는 사용은 웰빙현상을 유지시킨다. 하지만, 웰빙이라는 단어에 담긴 고도 소비주의 신화와 그 신화에서 소외된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경제적 약자 혹은 소수라는 이유로 쉽게 묻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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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와선 이론과 밴드웨건 효과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큰 목소리를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것은 따로 흐름을 거슬러 갈 에너지를 들이지 않더라도 관성에 몸을 싣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성의 힘에 의지하다보면 그런 의존적인 힘들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망설이던 무리들 역시 그런 흐름에 몸을 싣고 스스로 흐름에 힘을 보탠다. 언론의 역할을 파수견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감시뿐만 아니라, 새로운 현상에 대한 환기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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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사주간지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주제를 잡고, 결국 사회적 의제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는 일부 선각적인 방송 프로그램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의제를 주관한 것은 시사주간지였다.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 떠오른 것은 기자 혹은 편집자가 일반적 통념에 거스르는 기사를 쓰고 받았을 주변으로부터의 항의 혹은 역풍의 양이었다. 표지 이야기로 내세우기까지 편집국내에서도 얼마나 많은 토론이 있었는지 소개하는 글을 보고는 고민의 양을 가늠할 수 있었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가 종교적인 맥락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 고민은 더욱 컸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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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혹은 손대기를 꺼려하는 전인미답의 영역이 적지 않다. 지역감정을 예로 들면, 많은 언론이 지역감정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지만, 실상 지역감정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이미 이뤄진 지역감정에 대한 인식의 흐름을 아무도 거스르지 않고 편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방송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하느냐, 시대를 이끌고 가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오래되어 왔다. 중요한 것은 전자건 후자건 보편적인 시대정신과 휴머니티를 살릴 수 있는 방향과 합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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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월드컵 때의 일이다. 시청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굉장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언론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도 빨간 티를 입어서 입지 않은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의 열풍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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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필자는 이런 현상에서 약간의 무서움을 느꼈다. 약간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의 냄새가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광장문화의 탄생이라는 문화적인 분석이 곁들여져 현상에 대한 추임새는 가득할지언정, 경계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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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주말이면 하루 종일 올림픽 경기를 방송하는 채널로 스포츠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곤혹스런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일방적인 스포츠편성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고, 시청률도 많이 나오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생각과 정신들이 조화를 이룰수록 건강한 사회라는 진단이 옳다면, 획일적인 편성 역시 재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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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에 따르면 프랑스에선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는 대신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라고 쓰였다고 한다. 한 생각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똘레랑스의 정신이 우리사회에 있기라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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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수/ kbs 방송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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