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9.22 토 17:37

[PD의눈] 올림픽에 즈음하여

김형준/ EBS 참여기획팀l승인2004.08.26 13:50:0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contsmark0|살다보면 물에 빠진 누군가를 위해 다이빙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 미니시리즈를 봐도 3, 4회쯤에는 한 명쯤 물에서 허우적거리곤 하지 않습니까?
|contsmark1|
사람이 빠졌어요! 누가 좀 구해주세요! 그런데 수영도 못 하면서 그런 절규를 듣게 되지는 않을까 그게 늘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이었습니다. 저한테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영을 못하니 물가는 아예 근처도 안 갔기 때문이겠죠.
|contsmark2|
그런데 자식이 생기니까 좀더 현실적인 고민이 생겼습니다.
|contsmark3|
|contsmark4|
“저 아저씨 멋지다. 아빠도 저렇게 헤엄쳐봐.”
|contsmark5|
“… 너무 잘난 척 하는 거 같지 않니? … 참,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했지. 잠깐만 기다려.”
|contsmark6|
아버지가 되고 나서 이런 난처한 상황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미연에 방지해야지요.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도 준비해야할 게 몇 가지 있는 법입니다. 오토매틱 기어가 1단에서 2단으로 넘어가듯 아버지라는 자리도 자동으로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옛말 대신에 저는 자식을 낳으면서 수영인(?)이 되었지요.
|contsmark7|
|contsmark8|
마침 동무 삼아 수영장을 함께 다닐 회사 선배가 있어 새벽시간을 쪼개 열심히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숨쉬기도 곤란했습니다. 육지생물은 역시 육지에서 살아야 해, 다시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려하다니, 이건 진화론적인 후퇴야, 따위의 고급스러운 후회는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물 밖으로 콧구멍이 비칠 때마다 숨쉬기 바빴으니까요.
|contsmark9|
|contsmark10|
그래도 1년쯤 개근을 하니까 접영까지 흉내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수영을 배우면 두번의 환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유형을 배우면서 팔 꺾기를 할 때가 처음이고 (이즈음 되면 수영장에서 부끄럽지 않다는 자신감을 얻습니다) 그리고 접영을 시작할 때가 다음입니다. (접영을 하면 수영장의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것같이 뿌듯합니다. 당연히 아무도 안 봅니다, 내가 튀긴 물을 맞아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만 빼고는.) 그런데 이제 내 몸 하나 안 빠져죽을 만큼 수영을 하게 되니까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contsmark11|
|contsmark12|
그 힘든 접영은 왜 해야 하는지 도대체 까닭을 몰랐습니다. 접영 잘 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멋있지만 조금만 어긋나면 그게 얼마나 어정쩡한 자세입니까? 팔을 휘감아 엉덩이까지 밀쳤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리면서까지 자연을 거스르는 그 부자연스러움이란….
|contsmark13|
|contsmark14|
돌고래의 유영을 본떠서 만든 영법일까? 아니면 와이키키 해변에 몰려오는 파도의 형상을 보고 상상해낸 영법일까? 그래서 이리저리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뒤져보았습니다.
|contsmark15|
접영이라는 영법이 생기기 전, 그러니까 1930년대였습니다. 미국에서 수영대회가 열렸는데 마침 평형종목이었습니다. 1초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한 선수가 개구리처럼 움츠렸다 폈어할 팔을 그만 휘익 휘둘렀고, 그래서 1등을 먹긴 했는데 당연히 이 자세가 평영인가 아닌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종목 만들기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가만있었겠습니까? 에라 모르겠다, 그것도 봐줄 만 하네, 해서 버터플라이라는 멋진 이름도 붙이고 올림픽 종목에도 넣었답니다.
|contsmark16|
|contsmark17|
세상의 몇 가지 규칙은 그렇게 정해집니다. 돌고래고 와이키키의 파도고 그런 건 없었습니다. 누가 한 번 실수로 하는 걸 보고, 야 저거 우리가 먼저 하면 금메달 하나 추가요, 뭐 이런 식으로 시작된 거지요. 그렇게 실없기로 따지면 저한테는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쥐가 파놓은 듯한 구멍 안에 누가 먼저 공 집어넣나 시합한다는 게 우습게만 보입니다.
|contsmark18|
|contsmark19|
박세리 등 뒤로 곰 같은 캐디가 함께 허리를 숙이고 다음 타선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게 둘이서 함께 웅크리고 봐야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궁금해집니다. 골프나 자치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나이키 로고가 선명한 모자를 쓰고 캐디와 함께 막대기가 날아갈 다음 동선을 함께 고민하는 자치기 대선수의 눈동자. 그리고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는 몇천명의 갤러리와 수백만명의 시청자들.
|contsmark20|

|contsmark21|
접영과 골프보다 훨씬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은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늦잠 오래 자기’라는 종목은 하나쯤 있어도 될 법 싶습니다. 그러면 내 이름 앞에도 랭킹 몇 위라는 수식어가 붙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접영이나 골프나 늦잠 자기나….
|contsmark22|
밤낮 가리지 않고 온 채널이 올림픽으로 도배되는 걸 보면서 스포츠에 별 관심 없는 제가 해보는 푸념입니다.
|contsmark23|
|contsmark24|
김형준/ EBS 참여기획팀  pdnet@pdnet.or.kr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형준/ EBS 참여기획팀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8-715] 서울 양천구 목동 923-5번지 한국방송회관 10층l대표전화 : 02-3219-5613~5619l구독문의 : 02-3219-5618l팩스 : 02-2643-6416
등록번호: 서울, 아00331l등록일: 2007년 3월 5일l발행인: 류지열l편집인: 이은미l청소년보호책임자: 류지열
PD저널 편집국 : 02-3219-5613l광고 문의(PD연합회 사무국 · 광고국) : 02-3219-5611~2l사업제등록번호 : 117-82-60995l대표자 : 류지열
Copyright © 2018 피디저널(PD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