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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시평] 과거사 논쟁의 피로

관리자l승인2004.08.26 13: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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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고 있다면 과거는 반드시 청산돼야 하고, 잘못된 과거를 만드는 데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잘못된 과거에 의해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이뤄지고 있는 과거사 논쟁은 이런 맥락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과거사 논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압 정치를 상기시킴으로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뮤지컬 ‘청년 장준하’를 관람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장준하 씨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잘못된 과거를 남겼다. 일본군 장교 출신에다 공포정치를 강행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는 정부 주도의 경제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그것은 정경 유착의 구조를 남겼다. 그 구조는 그 이후의 정권들에게도 그대로 유지됐고 그것은 외환 위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러한 잘잘못을 모르는 시민은 거의 없다. 그리고 박근혜 대표가 그의 딸이라는 것을 모르는 시민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대표를 공격하기 위해 여당이 과거사 문제를 제기했다면, 불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잘못된 현재에 의해 잘못된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것이다. 시민으로부터 부여받은 힘을 역경에 처한 현실을 타개하는 데 주력하지 않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과거사 조사를 수용하고 나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고, 과거사 조사 대상에 북한을 지지한 인물까지 포함시키자는 것이 그 궁여지책의 맞불작전이다. 뒤로 물러가면 여당의 공세에 당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야당의 맞불작전 역시 잘못된 현재를 만들어가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이제 국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야는 서로 상대방의 과거사를 드러내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누구의 조상이 무엇을 하였는지, 군사정권에 동조한 사람은 없는지를 밝히려고 들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던 조상을 찾아내거나 북한에 동조한 사람을 찾으려 들 것이다.

그 사이 중요한 국정 현안은 지나치게 될 것이고, 국정 현안을 정쟁의 일환으로 처리하려 들 것이다. 시민들은 득표를 꾀하기 위한 정쟁을 내우외환의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제 정세와 경제는 날이 갈수록 험난해져만 가고 있는데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는커녕 서로의 과거를 들추어내고자 하고 있다. 깨끗하지 못한 과거를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석연하지 않은 이유로 과거사 조사를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문제이다. 이는 직접적인 정치적 탄압은 아닐지라도 간접적인 탄압이다.

지금이라도 정쟁을 중단하고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정치적 역량을 집중하기 바란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결단은 정쟁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 길이다. 시민들의 판단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정치인은 죽어도 살지만 그렇지 못한 정치인은 살아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정의 최우선 순위는 실업 대책과 교육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는 수많은 실업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잘못된 과거를 재창출하는 일이며, 잘못된 교육 제도로 수많은 학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방치하고 청소년들의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이외에도 한국 사회에는 그 동안 방치되었던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 문제를 풀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이 현재 잘못된 과거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일은 사회를 맑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한다는 핑계로 되풀이되는 정쟁은 한국 사회를 혼돈에 빠뜨리고 피로하게 만드는 일이다.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 많은 문제에 눈을 돌리기를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이홍균 /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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