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시평] 진정 당신들은 ‘민주주의자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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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시평] 진정 당신들은 ‘민주주의자들’인가
  • 이광일/ 정치비평 편집위원(정치학박사)
  • 승인 2004.09.0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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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국보법)의 존폐를 둘러싼 쟁점은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을 만큼 확연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미 이 법의 시대착오성은 지난 송두율 교수사건과 관련,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던 그가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남으로써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하는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보법폐지 권고의견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 헌법재판소가 독소조항으로 국내외 인권단체와 유엔인권위원회의 비판대상이 되고 있는 국보법 7조의 찬양·고무죄에 대해 합헌 판결을 냄으로써 이 문제는 또 다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굳이 쟁점이 되는 문제를 일일이 검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이 문제와 관련, 한 가지 숙고해야 할 것은 국보법의 존재가 단순히 법형식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그것을 넘어서 이 사회의 구성원리가 어떠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담고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는 점이다.

해방 이후 국보법은 그 양태를 변화시키면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검열 메커니즘의 강제력으로 기능해 왔다. 자기검열의 핵심은 바로 스스로 자신의 양심과 사상, 신념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 자본주의사회가 형성된 이후 당연시돼 왔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 부정하는 것으로, 대중의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삶조차 통제하고자 한 파시스트권력과 같은 공개적 독재체제에서 작동되었던 기제이다.

그런데 이 기제는 단순히 사회구성원들의 행위를 사후에 통제하기 위한 것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국보법은 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행위이전에 위축, 왜곡, 분절, 황폐화시킴으로써 결국 이 사회의 건전한 존립 자체를 뿌리부터 갉아먹는 암세포와 같은 기능을 한다.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근대세계의 핵심명제를 부정한다. 이는 주권자로서의 개별행위주체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분단체제는 바로 이 위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송두율 교수사건 2심재판부가 헌법에 보장된 학문, 사상, 양심의 자유를 국보법의 하위에 두었던 1심 재판결과를 교정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국가와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인간의 정신적 활동 자체를 억압하고 부정하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 용납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남북 대치상황 등을 되뇌며 국보법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발상과 행태가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민주적이고 개혁적임을 자부하는 집권정치세력은 물론, 이번 국보법 7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판결에서 보듯 민주주의의 마지막 수호자여야 할 최고법원조차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냉전시대의 화석화된 발상과 행태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우리는 과연 이들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양식과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세력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점과 관련해 한 가지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 있다. 국보법의 폐지 문제는 이 사회가 유지, 재생산되는 데 필수적인 ‘최소민주주의’와 그것을 넘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 사이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 사이의 선택의 문제이다. 따라서 국보법의 존폐 여부는 결코 정치적 타협과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을 넘어설 때만이 이 사회의 구성주체와 이 사회의 존재 의미를,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정치의 존재 의미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최소한 이 사회가 민주적, 합리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고 나아가 분단체제의 해소를 희망한다면, 우리는 이 평범한 질문을 더 이상 우회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이런저런 조건과 상황을 내세우며 더 이상 이 원칙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국보법 폐지문제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일 수 없으며 이제 그것은 정치적 결단의 문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당신들은 진정 민주주의의 옹호자들인가?

이광일/ 정치비평 편집위원(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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