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쇼크' 부풀린 경제보도, 진짜 경제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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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쇼크' 부풀린 경제보도, 진짜 경제 망친다
최저임금 1년 동안 4343건 보도 쏟아낸 경제지...경제 지표 입맛에 따라 제각각 해석
이봉수 세명대 교수 "경기침체기 경제보도 지렛대 역할...자본권력 영향에 경제 저널리즘 작동 안돼"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9.06.25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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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열린 미디어공공성포럼 세미나에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 발언하고 있다. ⓒ PD저널
24일 열린 미디어공공성포럼 세미나에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 발언하고 있다. ⓒ PD저널

[PD저널=이미나 기자] 한국 경제를 우려한다면서 '패닉' '공황' '쇼크' 등의 선정적 표현을 동원한 친기업 관점의 보도가 경기 침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24일 서울 전태일 기념관에서 열린 미디어공공성포럼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 세미나에서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다루는 언론 보도가 지속적으로 경제 위기설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하나인 최저임금제 관련 보도다. 2018년 한 해 동안 경제지 6곳은 최저임금과 관련해 최대 4343건, 최소 2232건의 보도를 내놨다. 기사의 제목 또한 '해고 도미노' '고용 참사' '물가 폭등' 등 부정적 함의를 자극적으로 표현했다.

이봉수 원장은 "청년실업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지만 최근 전반적으로 고용이 늘고 저임금노동자 비중이 줄어드는 등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일부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며 "하지만 실업자 수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등 보도하고 싶은 것만 보도하는 프레이밍 현상이 경제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파성에 따라 통계를 왜곡하거나 친기업·친자본 논조를 담은 보도도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을 두고 <조선일보>는 '실업자 수가 5월 기준 사상 최대'라는 점을 강조한 반면, <한겨레>는 '5월 취업자 26만 명 증가'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

공급 우선 정책을 주장하는 전문가의 발언만을 비중 있게 실어 주거나, 이주법 개정으로 해외이주 신고자가 는 것을 두고 '상속세를 피하려 해외로 이주했다'고 보도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겨레> 기자로 일하며 한국 경제 저널리즘의 현실을 체험했던 이봉수 원장은 이 같은 흐름이 비단 현 정부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봤다.

김영삼 정부가 '신한국'이라는 이름의 개혁적 경제 의제를 강조했지만, 언론이 '세계화' '국제화'를 강조해 개혁의 동력이 상실됐다는 것이다. 1996년 수출증가율이 떨어지자 보수언론 중심으로 위기설이 확산됐고, 이는 정부 경제팀이 교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새로 들어온 한승수 경제팀의 주도로 기업 규제가 풀렸고 IMF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게 이 원장의 분석이다. 반대로 정작 미국발 경제 위기가 닥쳤던 2008년에는 오히려 '위기가 없다'는 보도가 태반이었다. 

이봉수 원장은 "그릇된 경제 보도가 특히 경제 침체 때는 지렛대 구실을 한다. 경제 관련 뉴스는 오보나 과장 보도일지라도 경제 현실을 그렇게 만들어가는 ‘자기달성 효과’가 있다"며 기성언론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자본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의 현주소가 올바른 경제 저널리즘의 작동을 가로막고 있다며 "백약이 무효인 것 같다. 굉장히 비관적으로 본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재벌의 세습 경영 풍토와 '엘리트 카르텔'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왜곡된 경제 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영철 교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과 연결돼 있는 만큼,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선 (언론의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며 "최근의 경제 보도는 단순한 오보라기 보단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라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무차별적으로 수천 건의 (비판적) 보도가 나오다 보니 나중엔 <경향> <한겨레>에서도 '고용 쇼크' 등의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통계를 교묘히 왜곡하고 대중의 경제심리를 흔드는 경제 보도를 두고만 봐야 할까.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오보를 하나하나 지적하는 팩트체크도 중요하지만, 큰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같은 패턴으로 '경제 위기' 프레임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역시 "언론 시장에 '가짜'가 판치는 정도가 노태우 정권 때보다 지금이 더하다"며 "가짜를 파는 이들은 많은데 진짜를 아는 사람이 (발언할) 기회는 없다"고 지적했다.

최경영 KBS 기자는 포털사이트 위주로 뉴스 콘텐츠가 소비되는 현실에서 언론 선정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경영 기자는 "주목을 위해선 '하락'보다는 '급락'이, '불황'보다는 '패닉'이나 '공황'이 더 낫다는 것"이라며 "더 늦게 쓰더라도 얼마나 더 선정적으로 쓸 수 있는가의 경쟁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또 최 기자는 "이용자 입장에서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시장이 점점 형성되고, 그것이 경쟁력을 갖길 바란다"며 "이미 레드오션이 된 선정적 기사에서 벗어나 잘 정리되고 해석된 기사가 양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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