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위로하는 ‘파리의 딜릴리’ 
상태바
파리를 위로하는 ‘파리의 딜릴리’ 
미셜 오슬로 신작, 실종된 소녀 구출작전 통해 예술의 전성기 벨 에포크 시대 찬미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 승인 2019.06.27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영화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 (CBS <신지혜의 영화음악>진행)] 파리의 ‘원주민 마을’에서 일하는 꼬마 소녀 딜릴리. 뉴칼레도니아의 어린 토착민인 딜릴리는 후원자의 집에서 살면서 프랑스어 교육을 받고 상류 프랑스인들의 행동과 예절을 배운다.

벨 에포크 시대. 문화와 예술이 만개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 어린 소녀들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딜릴리는 오렐과 함께 실종된 소녀들을 찾기 위해 단서를 찾는다. 

두 사람은 곧 파리의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목격담이나 힌트가 될 만한 말들을 듣고 엠마 칼베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소녀들의 자취를 쫓아간다. 그리고 곧 파리의 이면에 감추어진 무섭고 어두운 면과 마주치게 되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소녀들 구출작전을 펼친다.

미셸 오슬로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파리의 딜릴리>는 두 말 할 필요 없이 필견 해야 한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준 <프린스 앤 프린세스>, <밤의 이야기>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키리쿠의 영웅담을 보여준 ‘키리쿠 시리즈’,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아주르와 아스마르> 등 애니메이션을 좀 본다 하는 사람들은 모를 수 없는 영화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미셸 오슬로는 여성, 이방인 등 소외된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부드럽지만 강하게 ‘인간’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아니지만 확고하고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는 우아하고도 품위 있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졌고 질문을 안겨 주었다. 

그의 신작 <파리의 딜릴리>는 어린 소녀들의 실종 사건을 좇는 딜릴리와 오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가 얼마나 멋진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또한 장면 장면마다 스쳐지나가면서 딜릴리와 오렐에게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거나 힌트 혹은 목격담을 주는 예술가들이 100 여명이나 된다고 하니 작품 속에서 이 사람들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게다가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등장해 우리 자신이 파리에 가있는 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한다. 

영화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영화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그런데 왜 벨 에포크 시대일까. 사실 이 작품이 시작되고 곧 2015년 파리 테러가 생각났다. 직접적으로 작품 속에 그 사건이 등장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작품 속 소녀들의 실종 사건을 보면서 어딘가 파리 테러의 충격과 슬픔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곧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은 커다란 슬픔을 겪은 파리를 위로하는 것이구나.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어 파리를 살찌우고 풍부하게 했던 시대, 벨 에포크. 인류의 지식과 감성과 예술혼이 불타오르던 그 시대의 중심, 파리. 

‘세탁선’에 모여서 창작활동을 하던 가난하지만 반짝거리던 화가들의 모습과 그들의 대표작들이 보여지면서 인간의 예술활동이란 어떤 것인지 그것들이 우리 마음에 어떻게 뛰어 들어오는지 전해진다.  

그것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파리는 스스로의 자부심으로 슬픔과 아픔을 견디어낼 힘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게다가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이 우아하고 품위 있는 방식이라니!

그렇다면 왜 소녀들의 실종 사건일까. 작품 속에서 실종된 소녀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냈는지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경악하게 된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 폭력적인 마음, 그 비뚤어진 가치관에 동조하는 무지하고 몽매한 남성들. 

그리고 그것이 틀린 것임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돌려놓는 남성들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덕목, 올바른 가치관을 새삼 일깨워준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올바른 가치관과 올바른 행동이란 어떤 것인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이 단순한 이야기에 커다랗고 아름다운 가치를 심어 놓았다. 

프랑스의 애니메이션은 깊고 풍성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 연속촬영을 해서 최초로 ‘애니메이션’의 개념을 현실에 이끌어 낸 에밀 콜에서 시작해서 폴 그리모, 르네 랄루, 실뱅 쇼메 등 쟁쟁한 작가들이 보여준 작품들은 흥미진진하다. 

그 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미셸 오슬로의 작품 <파리의 딜릴리>는 영상미와 벨 에포크 시대의 찬미를 넘어 슬픔과 차별을 딛고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