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본 예능, '혐오 표현' 자막 왜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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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본 예능, '혐오 표현' 자막 왜 반복되나
지역·소수자 비하 용어 버젓이 등장하는 예능...젊은 층·유행에 민감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 환경 영향
'뜨는' 인터넷 커뮤니티 용어 의미도 모르고 차용..."혐오 표현 심의 제재 강화해야"
  • 김혜인 기자
  • 승인 2019.07.04 11: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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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아내의 맛'은 지난 25일, 출연자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전라디언’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전라디언’은 ‘전라도인’과 ‘인디언’을 합친 단어로 호남 지역인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TV조선
TV조선 '아내의 맛'은 지난 25일, 출연자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전라디언’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전라디언’은 ‘전라도인’과 ‘인디언’을 합친 단어로 호남 지역인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TV조선

[PD저널=김혜인 기자] 예능 프로그램들이 혐오·차별 표현을 사용한 자막으로 시청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 쓰이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가져오는 제작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자막 사고는 반복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TV조선 <아내의 맛>은 지난달 25일 방송에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전라디언’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전라디언’은 호남 지역인들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극우 성향의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 이용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다. 

TV조선은 곧바로 “제작팀은 이 용어가 일베사이트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6일 낸 논평에서 “특정지역민만을 비튼 표현을 쓸 때는 차별과 비하의 의도가 들어있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은 당연히 가져야했다"며 "그 정도의 인권감수성도 없이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2>도 샘 오취리가 등장한 장면에 '트랜스대한가나인'이라는 자막을 달았다가 논란이 일었다. 일부 극여성우월주의 단체에서 '트랜스젠더' 존재를 비하하기 위해 '트랜스'라는 접두어를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트랜스젠더 인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트랜스해방전선’은 성명서를 통해 “MBC는 타인의 존재를 유희 거리로 삼아 혐오 장사를 하지 않으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라며 “트랜스젠더를 유희 거리로 삼는 MBC의 혐오 장사를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지난 28일에는 MBC '마이리틀텔레비전2'가 대한민국 역사를 막힘없이 설명하는 출연자 외국인 샘 오취리 아래에 ‘트랜스대한가나인’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MBC
지난 28일에는 MBC '마이리틀텔레비전2'가 대한민국 역사를 막힘없이 설명하는 출연자 외국인 샘 오취리 아래에 ‘트랜스대한가나인’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MBC

시청자들의 인권 감수성에 부합하지 않는 자막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예능프로그램에서 자막은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로, 기발한 자막은 젊은 시청층으로부터 '미친 드립력' '병맛 자막'이라는 호응을 받는다.

젊은 층에 소구하는 측면이 크다 보니 제작진도 10~20대가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갤러리를 들락거린다. 낚시를 소재로 한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는 인터넷 Mnet 갤러리 등 젊은 세대의 비중이 많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쓰는 용어가 자막에 자주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다. 

한 방송사 PD는 “낚시라는 올드한 소재의 프로그램에 젊은 층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며 "<도시어부>는 방송가에서 아이돌 팬 커뮤니티를 염두에 두고 인터넷 용어를 자막에 잘 활용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인터넷 용어를 빈번하게 가져다 쓰지만 용어의 출처와 어원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 방송사 예능 PD는 “‘무조건 웃겨야 한다’는 강박과 유행을 빠르게 수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반응이 좋은 인터넷 커뮤니티 용어들을 빠르게 습득해 가져다 쓴다”라며 “문제는 대부분의 커뮤니티 용어가 일베에서 나온다는 건데, 용어의 어원까지 다 확인하며 자막을 달 시간이 없다”라고 말했다.

문제가 있는 용어를 자막에 썼다는 사실은 주로 방송이 나간 뒤에 드러난다. 제작진의 상호 검증과 심의 과정에서 발견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한 예능 PD는 “통편집본을 볼 때 재미 위주로 보지 이 표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며 "이런 제작 현실 때문에 고 노무현 대통령 일베 이미지 사용이 반복된 것인데, 제작진이 자체적으로 걸러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말했다.

차별과 혐오 표현에 대한 외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제작진은 단순 재미를 위해 무분별하게 혐오 표현을 차용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나 차별이 일상화하는 데 방송의 책임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윤여진 사무처장은 “방송사 내부적으로 작가나 출연자, 제작진을 상대로 한 인권 교육이 필요하고, 혐오 표현에 대한 엄격한 방송 심의로 방송사가 더욱 주의 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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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2019-07-08 09:35:20
'된장녀 대신 된장조개' 자막이 빠졌네요. 여성혐오단어를 더한 여성혐오단어로 바꿔쓰는 대단한 클래스의 일베자막은 왜 빠졌나요?

- 2019-07-04 16:20:02
트랜스 대한 가나인 저거는 그냥 trans라는 단어에다가 대한 가나인 붙인 거 아닌가요? 전혀 혐오로 안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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