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피는 라디오 
상태바
밤에 피는 라디오 
청취자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심야라디오의 매력...'Music High' DJ 우원재에 거는 기대
  • 김훈종 SBS PD
  • 승인 2019.07.09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저널=김훈종 SBS PD] 편.주.버.독.자.하! 이게 대체 뭔 말일까, 의아해 하실 게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이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하하의 텐텐클럽> 애청자였음에 틀림없다.

<무한도전>의 상꼬맹이 하하가 아닌, 라디오 DJ 하동훈과 함께 방송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하하는 라디오에서만큼은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겠노라며, 하동훈이란 본명을 사용했다.  

당시 편의점, 주유소, 버스, 독서실, 자취방, 하숙방에서 듣는 애청자가 유독 많았다. 그들을 우리는 ‘편.주.버.독.자.하’라고 부르며 우대했다. 선물도, 문자 소개도, 신청곡도 먼저였다. 놀랍게도 당시 <텐텐클럽>은 라디오에 걸맞지 않게 두 자릿수 청취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편.주.버.독.자.하’의 아픔을 때론 웃음으로, 때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솔직하게 보듬은 DJ 하동훈 덕분이었다. 

40대 이상 아재들은 기억한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별밤을 안 들으면 다음 날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라디오 외에 청소년들이 접할 수 있는 별다른 매체가 없었다.

텔레비전이라도 보려면 ‘너 대체 시험공부는 언제 할래!’라고 울부짖는 부모님의 눈총을 견뎌야했다. 그러나 <텐텐클럽>이 사랑받던 당시에는 이미 인터넷으로 미드를 찾아보고, 휴대폰으로 음악도 듣고 검색도 하던 시절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큰 사랑을 받았던 걸까?             

편의점에서, 주유소에서, 독서실에서 그들은 온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 DJ가 내 신청곡을 들려주고 내 고민에 함께 울어줄 때, 청취자들은 위안을 느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이면, ‘비처럼 음악처럼’을 고래고래 쉰 목소리로 불러주던 DJ. 청취자들의 애환이 묻어나던 자작시를 시집으로 엮어낸 DJ. 때로는 청취자들과 싸우기도 하고, 삐치기도 했던 DJ. 그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오롯이 진심 때문이었다.    

심야 라디오는 DJ와 청취자가 진심을 소통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특별하다. 매일 밤 11시 진심을 나누기 위해 새롭게 SBS 파워FM의 식구가 된 래퍼가 있으니, DJ 우원재다. 그의 등장은 신선했다. 검정 비니 속에 감춰진 우수어린 눈빛, 세상 모든 울분을 다 씹어 뱉어낼 것 같은 다부진 입매. 삼복더위에 육개장 마시듯 털로 짠 비니가 답답해 보였지만, 그의 입에서 쏟아내는 랩은 얼음 둥둥 사이다, 그 자체였다. 

합리화 굴복 타협
현시대 문제 이게 다여
계급화 편견 차별
결과고 여기 누가 그리 당당할까요

- 쇼미더머니 경연곡 <MOVE> 중 

애정하는 후배가 DJ 섭외부터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기획한 첫 방송이라 어젯밤 정말 오랜만에 심야 라디오를 들어봤다. 갑자기 졸린 눈을 부비며 시험 공부하던 그 밤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피곤에 절어 막차를 타고 자취방으로 향하던 그 밤이, 실연에 울고 깡소주에 젖었던 그 밤이 문득 떠올랐다.

심야 라디오는 결국 힘들고, 지치고,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이 듣는다. 공감과 위로가 없는 심야 라디오 DJ는 그래서 공허하다. 첫 게스트였던 그레이의 표현대로 우원재는 ‘애어른’이다. 세상의 아픔에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공감하는 래퍼이기에 <우원재의 Music High>에 흠뻑 취할 청취자가 많으리라 기대해본다.

<쇼미더머니>로 유명세를 탄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했다. “원재라는 책 한 권을, 앞으로 잘 써나가길 바란다. 이제 시작하는 거니까.” 우원재라는 심야 라디오, 앞으로 잘 들려주길 바란다. 이제 시작하는 거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