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어느 중국 다큐멘터리스트의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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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다큐멘터리는 진실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창조적으로 다루는 것이며…사회의 진실된 소리와 모습을 듣고 보는 것이며…현실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줬을 때 임무가 완성된다…’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고전적인 정의들을 지금도 의심치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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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믿음에 배신을 주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얼마전 ebs가 ‘변혁의 아시아’라는 주제로 개최하여 성료한 제1회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eidf) 심사 현장에서 일어난 소동이다. 말할 나위 없이 ebs의 이번 행사는 한국 방송사에 한 획을 긋는 빛나는 기획으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번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주최측의 의도와 달리 옥의 티로 남는 일이 발생했다.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경쟁부문에 출품됐던 <금지된 축구단>과 관련된 중국측 심사위원의 결코 향기롭지 못한 처신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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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금지된 축구단>은 인도 다람살 지역으로 망명한 티벳인들이 축구팀을 만들어 피파(fifa)와 중국정부의 방해를 무릅쓰고 덴마크에서 그린란드 팀과 경기를 치르는 과정을 담은 작품(감독 아놀 크롤가아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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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국측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왕 아무개 감독은 심사대상 프로그램 중에서 이 작품을 보고, 아무래도 중국 당국의 ‘심사(心思)’를 거스를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고약하게도 이를 본국에 ‘제보’했다는 것이다. 정치 후진국이자 언론탄압국인 중국에서 그 다음에 일이 어떻게 진행됐겠는가. 사태를 인지한 중국 당국은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중지를 ebs측에 요청했고 이런 망측한 ‘압력’을 주최측은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자 중국인 심사위원인 왕 감독이 심사위원을 사퇴하고 귀국해버렸다고 한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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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의 한 관계자는 “다큐축제는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행사가 아니라 아시아지역의 치열한 삶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다. 그런 일들은 다큐축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압력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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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치적인 행사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자국의 국가정책과 다른 내용을 담은 출품작이 있다고 해서 이를 사전에 당국에 보고하고 뜻이 관철되지 않자 심사를 거부하는 일은 아무리 봐도 아름답지 못하다. 티벳, 신쟝 등 변경 지대의 사정에 민감한 중국의 입장은 작금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 사태를 통해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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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 감독의 행동은 납득하기 어렵다. 명색이 미와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스트 아닌가.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는 국경이 있다더니 그에게는 이 말도 부적절하다. 그는 프로그램이 공식 공개되기도 전에 특정 국가의 ‘신민’으로서 활동했다. 다큐멘터리스트 이전에 다큐멘터리에서부터 국경이 있음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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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국익에 앞선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보면 이것이 더욱 실감난다. 왕 감독인들 이 좋은 금과옥조를 몰랐겠는가. 그러나 탁상공론의 장과 실천궁행의 장에서 이 한마디는 엄청나게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왕 아무개 감독의 처신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 유사 이래 최대의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오늘의 한국에서 이번 제1회 eidf의 <금지된 축구단> 사태는 ‘금지된 다큐멘터리’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타산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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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 : 제1회 ebs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대상은 공교롭게도 중국의 <안녕 나의 집>(감독 간차오·리앙지)에 돌아갔다. 그런데 <금지된 축구단>의 여파로 본국의 훈령이 있었는지 아니면 알아서 한 것인지 이들은 공식적인 수상 인터뷰를 거절하고 대상만 챙겨 갔다. 주최측은 이들이 수상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1만5000달러의 상금은 소정의 절차에 따라 송금할 것이라고 한다. 역시 중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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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화/ mbc 시사교양국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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