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던 이용마 기자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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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정상화 이후 일상 되찾았지만 공정방송 요구 목소리는 점점 옅어져
먼발치에서 본 이용마 기자, 해직‧투병 기간에도 결연한 의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21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용마 기자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고 이용마 기자는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 당시 해고된 후 복막암 판정을 받았다. 2017년 복직했으나 21일 오전 6시 44분 서울아산병원에서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뉴시스
21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용마 기자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고 이용마 기자는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 당시 해고된 후 복막암 판정을 받았다. 2017년 복직했으나 21일 오전 6시 44분 서울아산병원에서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뉴시스

 

[PD저널=허항 MBC PD] 올 초부터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 입사 후 거의 공백기 없이 달려오다가, 반년 넘게 방송을 떠나 지내는 일상은 적응이 될 듯 말 듯 아직도 어색하다. 

특히, 휴직 중에는 시간이 흘러가는 형태가 현장에 있을 때와는 다른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은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10년여 간 나의 시간 역시 일주일을 마디로 흘러갔다. 회의하고, 캐스팅하고, 녹화하고, 편집하고, 방송을 내고, 다음날 하루의 휴일로 지난 6일간 쌓인 피로를 푸는 것. 그 일주일의 사이클이 내 시간의 한 ‘마디’였다. 

그런데 육아휴직자로 지내기 시작하니, 일주일씩 딱딱 끊어지던 ‘마디’는 모두 사라지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의 ‘덩어리’ 안에 사는 느낌이다. 아기에게는 낮과 밤이 없고, 육아에는 쉬고 다시 시작한다는 개념이 없다. 회사에 다닐 때는 그래도 일주일마다 프로그램이라는 결과물이 나왔는데, 육아는 결과물이 모호한 노동이기에, 마치 끝없는 시간의 터널 안을 마냥 걸어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시간 개념도 무뎌진 채 집에만 있다 보니 취미라도 만들고 싶어서 두어달 전 식물들을 집에 들였다. 극락조, 행운목, 몬스테라, 남천나무 등 인터넷에서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것들 위주로 구입했다. 육아와 별도로 소소한 나만의 결과물 같은 것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식물들의 성장과정을 보면, 시간도 조금 명확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 식물들은 나의 시간 개념을 더욱 무뎌지게 하고 있다. ‘키우기 쉬운 식물’ 이라는 것의 함정일까. 물을 주어도, 안 주어도, 식물들에게 딱히 변화가 없다. 드라마틱한 성장속도를 보여주지도 않고, 꽃이나 열매가 달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시들해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나의 막연한 시간을 더 막연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21일 갑자기 부고가 날아왔다. 복막암으로 투병하시던 MBC 이용마 기자가 끝내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직접 뵙고 말씀을 나누어본 적은 없지만, 파업 현장에서 결연하게 발언하시던 모습이 참으로 생생하던 분이다. 영화 <공범자들> 안에서도, 다소 수척하셨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결연한 모습을 보고 완쾌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갑자기 날아 들어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향년 50세라는, 너무도 젊은 나이였다.

해고자 복직이 결정된 후, 휠체어에 타신 채 출입증을 찍고 회사로 출근해 들어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를 비롯한 MBC 직원들에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상징적인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장면의 뭉클함을 뒤로 하고, 또 MBC 구성원의 시간은 다시 방송제작 주기에 따라 빠르게 흘러갔다. 나 역시 일주일마다 나오는 결과물에 전전긍긍하고, 일주일마다 주어지는 휴일에 ‘소확행’을 느끼는 예능PD로 빠르게 돌아갔다. 공정방송을 외치던 목소리들이 한동안 마음속에 생생했다가 그 빠른 시간에 묻혀 점점 잦아들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야 문득 가슴 아픈 생각이 날카롭게 마음을 지나간다.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 단위로 치열하게 살았던 기자생활을 갑자기 떠나게 된, ‘해직기자’의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반드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하셨다고는 하지만,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마치 보일 듯 말 듯 불투명한 안개 덩어리 같은 그 무엇은 아니었을까. 

설상가상 느닷없는 병마로 긴 투병을 하셨을 때의 그 시간은 또 무엇이었을까. 뉴스를 만들 때와는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서, 천생기자는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결연한 눈빛을 유지하실 수 있었을까. 

한참 아래인 예능PD가 보도국의 중견기자를 일터에서 마주칠 기회는 거의 없다. 파업 현장에서도 먼발치에서 뵈었던 것이 전부였다. 전해들은 말들로만, MBC와 언론자유를 위해 꿋꿋이 정도를 가셨던 분이라는 것만 확실히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런 분을 이런 글로 추모한다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다. 

끝없는 우주 같았을 그 시간, 잠시 쉬어갈 마디 하나 없었을 그 시간을 결연히 견뎌내신 이용마 선배님. 이제 편안함만 있는 시간 속에서 편히 잠드셨으면 좋겠다. 오늘, 자라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극락조에 자그마한 새순이 하나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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