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니다 천리마마트’, ‘기승전병’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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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니다 천리마마트’, ‘기승전병’의 묘미
'직원이 왕'인 천리마마트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B급' '병맛'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시청자 호응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18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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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현장포토. ⓒtvN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현장포토. ⓒtvN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B급 병맛 코드의 웹툰이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은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며 황당함에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르겠다.

첫 회부터 얼굴에 해바라기 형상의 모자인지 두건인지 알 수 없는 걸 두르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정복동(김병철) 사장의 모습도 황당하지만, 그 곳에서 마트 안내를 맡아 일하는 이들이 빠야족이라는 부족이라는 상황은 더더욱 기가 막힌다.

심지어 드라마는 마치 인도 영화를 보는 듯, 빠야족의 춤과 노래를 갑자기 보여주기도 하고, 고객만족센터에 곤룡포를 입은 직원이 왕처럼 앉아 불만사항을 얘기하러온 손님을 고압적으로 맞기도 한다. 대마그룹의 유배지라고도 불리는 천리마마트가 정복동 이사를 사장으로 맞게 되면서 보여준 새로운 풍경이다.

여기서는 ‘손님이 왕’이라는 구호는 무색해진다. 너무 손님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라며 입구에 손으로 밀어서 충전이 되어야 문이 열리는 회전문을 설치해 놓는 사장이다. 그는 ‘직원이 왕’인 마트를 꾸려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그것이 마트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적인 행동인지 아니면 마트를 살리기 위한 큰 그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놀랍게도 정복동 사장의 선택들은 마트의 매출을 쭉쭉 끌어올린다. 정직원으로 덜컥 뽑아놓은 빠야족들은 의외의 영업력과 기술을 보여주며 고객들을 사로잡고, 곤룡포를 입고 맞이하는 고객만족센터는 고객을 무릎 꿇리게 하면서도 잘 돌아간다.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현장포토. ⓒtvN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현장포토. ⓒtvN

손님을 끌어오기 위해 마련한 문화행사에서 만년 가수지망생이었다가 정직원으로 취직한 조민달(김호영)이 헤비메탈을 하는 바람에 행사가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가지만, 의외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모두가 귀를 막고 경악할 때 전직 조폭출신인 오인배(강홍석)가 무대를 제압하려 하자 조민달의 아들이 올라와 눈물로 호소하면서 그 무대를 마치 한 편의 뮤지컬 퍼포먼스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정복동 사장은 비관해 차로 뛰어든 묵 만드는 회사 사장에게 세 배 가격으로 납품을 허락하기도 한다. 이에 문석구(이동휘) 점장은 극구 만류하지만 가업으로 내려오는 비기까지 써서 가격 걱정 없이 최고의 묵을 만들어내는 바람에 천리마마트는 대박을 치게 된다. 결국 외국인들까지 찾아와 구매하게 되면서 정복동 사장은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다. 

물론 웹툰 원작이 가진 강력한 B급 코드는 이미 이 작품이 나왔던 2013년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웹툰에서는 일찍이 하나의 코드로 받아들여졌던 B급이 이제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그 황당한 이야기에도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제 B급 병맛 코드가 웹툰만이 아닌 다른 장르의 콘텐츠에도 먹히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의 오랜 문법은 이른바 기승전결의 구조와 개연성을 바탕으로 삼고 있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어딘가 황당무계한 스토리라고 외면 받는 게 드라마의 세계다. 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이 틀을 훌쩍 벗어난다. 흔히 말하는 ‘기승전병’의 반전을 보여주는 것.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이 구조와 개연성 파괴에 통쾌해하는 건 왜일까.

기승전결이라는 상투적인 틀과 개연성으로 정해진 현실을 이들 B급 병맛의 세계가 통쾌하게 깨버리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된 이른바 A급으로 불리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면, 소외된 서민들에게 B급 병맛 코드는 일종의 판타지가 된다.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 가진 자들의 룰이라면, 못 가진 자들은 룰에서 소외된 존재가 된다.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서민들은 그래서 저들의 이른바 A급 판타지(기승전결로 흘러가는)가 아닌 그들만의 B급 판타지를 꿈꾸기 시작했다. 

대충 해도 잘 되는 천리마마트의 황당한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이유다. ‘고객은 왕’이라는 논리로 노동자를 짓밟는 저들의 세상에 ‘직원이 왕’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갑질 회사에 오히려 세 배의 가격을 쳐주면서도 대박을 내는 엉뚱한 판타지의 세계라니, B급 병맛 코드에 매료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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