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사실에 의존한 '조국 보도' 언론 불신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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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조국 이후 언론개혁' 주제 세미나
언론 개혁 필요성과 문제의식엔 발표자·토론자 모두 공감...향후 전망·대안 두고는 이견

25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언론개혁: 취재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 세미나가 열렸다. ⓒ PD저널
25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언론개혁: 취재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 세미나가 열렸다. ⓒ PD저널

[PD저널=이미나 기자] 이른바 ‘조국 대전’이 촉발한 언론개혁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25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열린 '언론개혁: 취재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 세미나는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언론 보도의 문제를 학계와 언론인들이 처음으로 돌아본 자리였다.

손병우 한국언론정보학회장이 이날 세미나에 앞서 "섭외 제안에 11명이 거절했다"며 털어놓을 정도로 학계와 언론계 내부에서 '조국 보도'는 민감한 화두다. 세미나에 참석한 언론학자와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언론개혁의 방향과 가능성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이날 먼저 발제에 나선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검찰이 흘리는 말부터 사기업의 실적 통계, 국제보고서의 통계 등 사실을 보도하는 게 ‘뉴스’가 되는 건 맞지만 그것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뉴스가 공중과 공론장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르게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조각의 새로운 사실이 뉴스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해당할 수 있지만, 바람직한 뉴스를 만드는 충분조건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또 지금의 언론 보도에는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목적도 깔려 있다고 봤다.

이준웅 교수는 “우리 언론은 사회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 상황을 한 쪽으로 몰아가는데 능한데 이를 한국언론의 ‘경향성’이라 부를 수 있다”며 “사실의 일부를 선별적으로 강조하거나 사실을 윤색해 제시하는 등 공중의 이해를 돕기보다 그들(공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뉴스를 제작해 유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기자 출신이기도 한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 단편적 사실로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 △ 검찰과 같은 취재원의 말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거나 지나치게 신뢰하는 행태 △ 소위 센 ‘야마’(기사의 핵심, 주제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기자 주)를 위해 사실을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하거나 과장하는 경향 △ 과다한 단독 경쟁과 같은 오래된 언론의 관행이 지금의 언론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실제 조국 전 장관 가족을 두고 쏟아진 기사들에서도 이런 관행에서 비롯된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영흠 교수는 지난 9월 7일 SBS가 보도한 <“조국 아내 연구실 PC에 ‘총장 직인 파일’ 발견”> 기사를 두고는 “검찰이 유출하지 않고서는 외부에 알려질 수 없는 수사 진행 상황이 보도된 사례”라며 “저장된 직인 파일이 위조라는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더 신중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또 9월 21일 채널A의 <“정경심 처음 봤다”던 병원장은 서울대 동기였다> 기사를 두고는 “진료기록이 전산에 남아있지 않다면 기자가 의구심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병원장이 정경심 교수와 같은 해 같은 대학 다른 학과에 입학했다는 정도의 사실만 갖고 ‘야마’를 무리하게 잡아 끌어당긴 억지 기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박 교수는 지나친 단독 경쟁의 문제를 강조했다. 박영흠 교수는 “특히 검찰 보도와 인사검증 보도에서 단독 경쟁이 심각한데,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의 경우 인사검증 보도로 시작해 검찰 보도로 넘어가면서 경쟁이 심화됐다”며 “(단독 경쟁이) 공론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염시키고 있다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박영흠 교수는 “‘기레기’가 전 국민이 모르지 않는 단어가 되었는데 하나의 직업을 멸칭으로 부르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저널리즘의 위축이나 유사 저널리즘의 범람으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들기도 한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기능이고 저널리즘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의혹제기가 (언론의) 무절제한 의혹제기 때문에 차단된다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를 떠나기전 기자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 14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를 떠나기 전 기자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토론자들도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에 대한 문제의식과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박건식 MBC <PD수첩> CP는 “소비자인 대중의 의식은 발전해 왔는데 기자들은 여전히 50년 전 생산자 관행에 머물러 있고, 그 격차가 이번 문제의 핵심”이라며 “권력을 감시하겠다며 생겨난 출입처 제도가 어느 순간 권력과 동화·유착되는 결과를 낳으면서 기자들이 (권력을 감시하기 위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양순 KBS <저널리즘 토크쇼J> 팀장도 최근 ‘정경심 교수 자산관리인’ 김경록 씨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일어난 논란을 두고 “당시 왜 온라인 기사 등을 통해 전체 질문과 답변을 정리해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이 국장급부터 1년차 기자까지 공유돼 있는 것 같다”며 “유시민 이사장이 거칠고 세게 비판한 부분은 있지만 그 아래에 깔고 있는 본질은 KBS 기자들도 동의하고 앞으로 고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번 '조국 보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발제에서 박영흠 교수가 단독경쟁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언론사 간 공동취재를 제안한 데 대해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기자들이 공유하는) 동질성을 공동취재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고,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단순히 언론의 윤리성과 공정성을 외치는 건 낙관론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인도어과 교수는 "언론의 범주를 허물어 완전한 해체가 돼야 한다”며 “언론인 수가 많아진다거나 사주가 바뀐다고 해서, 출입처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라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언론이 반성해야 한다는 데엔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만, 정보화 시대에 확증편향 현상이 심화되면서 대중이 자신의 믿음과 뉴스가 충돌하는 경우 더 이상 뉴스를 믿지 않는다”며 “‘믿음에 맞는 뉴스만 가져오라’고 요구받는 현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준웅 교수는 “현실을 비관하기는 쉽지만 이는 실천을 추동하기는 어렵다”며 “다층 다양한 의견의 통로를 만들어 주고 의견 간의 경쟁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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