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엄마가 되면 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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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가도 달리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악플·평점 테러 쏟아지는 이유는
엄마에 대한 인간적 접근은 왜 없었나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PD저널=허항 MBC PD] 직업 탓일까, 성격 탓일까. 우울해지는 영화를 잘 안 보게 된다.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클로즈업했거나,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영화를 보면 최소한 며칠 동안은 우울한 기분에 시달린다.

생각이 너무 많고 잘 우울해지는 성격이, ‘예능PD’인 내 본업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까봐 늘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래서 일부러 즐거운 것 웃긴 것을 찾아보며 ‘인생은 즐거워 즐거워’ 주문을 걸곤 한다. 

그렇다보니, 너무 보고 싶은데 못보고 있는 영화들이 쌓여 있다. 최근에는 <벌새>가 그랬고, 지금은 <82년생 김지영>이 그렇다. ‘벌새’는 하필 딱 나와 동갑내기인 소녀의 이야기고, <82년생 김지영> 역시 내 나이, 상황과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다. 그 주인공들에 감정이입을 했다간, 시기상 가을 우울증 같은 것에 걸려들 공산이 크다. 

특히 ‘82년생 김지영’은 책으로 읽은 충격이 이미 너무 커서, 그것을 생생한 장면과 소리로 접하기가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 책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담담한 서사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왠지 그 포인트가 두고두고 복잡한 생각에 잠기게 할 것 같다. 결국 개봉일이 며칠 지난 지금까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정독한 입장으로서 의문이 든다. 이 책, 혹은 영화의 어느 포인트가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걸까. 평점테러는 또 무슨 이유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 적확한 상황묘사와 심리묘사에 깊이 공감했던 내가 이상했던 걸까.

김아연 작가가 쓴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외로웠던 것은 원래 육아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엄마를 향한 ’인간적 접근‘이 없기 때문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다. <82년생 김지영>에 ‘악플’을 단 사람들은 ‘엄마’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 엄마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해본 적은 있는지, 그냥 모든 것을 참아가며 육아에 ‘올인’하는 것이 올바른 엄마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건지. 

평점 테러와 악플의 맥락으로 볼 때 한국 사회에서 ‘엄마’는, 아빠의 경제활동에 기대어 사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하고, 육아는 당연히 조용히 참아가며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존재감이나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 ‘맘충’이 된다. 늘 참고 견디는 엄마, 미안해하는 엄마, 짜장면이 싫다고 하는 엄마. 그런 엄마들을 ‘위대한 엄마’로 정의해온 탓일까. 왜 유독 우리 사회는 엄마에 대한 평가가 박한 걸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갓난아기를 키운 올 한해,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느꼈다. PD라는, 내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던 타이틀은 생각보다 쉽게 지워졌다. 어딜 가든 ‘00엄마’로 통했다. 물론 그 타이틀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타이틀을 부르는 목소리 저 너머에서 아주 미묘한 하대가 느껴지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아기 엄마가 여기 왜 와요. 엄마가 그것도 몰라요. 엄마가 잘 했어야죠. 엄마가 그런 옷도 입네요...

하지만 그 미묘한 느낌은 누군가와 나누기 애매했다. 뾰족한 증거도 없고, 무엇보다 그것을 나누는 순간 내가 ‘피해의식 가득한 대한민국 엄마’로 보일까 봐 그랬다. 그렇게 애매한 감정이 쌓인 엄마들끼리 ‘맘 까페’나 지역 커뮤니티 등에서 서로 이해해주고 보듬어준다 한들, 그 커뮤니티 자체가 또 한 번 ‘진상 집단’으로 치부되는 현실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82년생 김지영>이 평점테러에 시달린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들’ 본인은 분명히 뭔가 힘들다. 하지만 그 힘듦을 설명할만한 뾰족한 단어나 통로 같은 것이 없다. 그렇다보니 이미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징징대는 이야기’로 느껴질 법하다. 책이나 영화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안되겠다. 우울해질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나 스스로라도, 적확한 설명법을 찾아야겠다. 대한민국의 엄마이자 PD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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