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수락 신중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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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구매욕 자극하는 현란한 추천 문구...추천인에 대한 실망으로 돌아오기도

지난여름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몰 서점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
지난여름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몰 서점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뉴시스

[PD저널=박재철 CBS PD] 연륜은 쌓일수록 주례사를, 명성은 쌓일수록 추천사를 부른다. 물론 나에게는 그런 제안이 한 번도 없었다. 연륜도 명성도 없기에 당연하면서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줄곧 그랬으면 좋겠다.

최근 인품 좋은 한 선배가 주례사를 부탁 받고 며칠 동안 고심하는 모습을 보았다.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쪽 만큼이나 승낙도 조심스러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지난 8월엔 장관 후보자의 고3 딸이 쓴 책에 인도 대통령의 추천사가 실려 인사 청문회를 시끄럽게 한 일도 있었다. 읽어보지도 않았을 법한 책에 자신의 명성을 한줌 떼어 주는 일 역시 만만히 볼 일은 아니다. 일상적이기도 하고 일탈적이기도 한 주례사와 추천사, 그 둘은 가만히 보면 닮았으면서 다르다. 

우선, 덕담과 상찬, 치하와 격려의 장이란 점에서 무척 비슷하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있으면 더 크고 더 풍성히 풀어놓아야 좋다. ‘그렇게 해주십사’ 부탁을 하고 ‘그렇게 하겠노라’고 응하는 상호간의 묵시적 약속이다. ‘묵시적’이라고 얕잡아 볼 약속은 아니다. 허술히 여겨 금이라도 갈라 치면 서로 다음에 볼 일은 없어진다.   

그렇다. 주례사, 추천사는 축복의 저수지에 담길 찬사의 물줄기를 끊임없이 실어 나르는 일이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방향의 차이는 없다. 주례사를 하면서 둘의 앞날을 어둡게 채색할 수 없고, 추천사를 쓰면서 시간을 아끼려면 당장 그 책에서 손을 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요컨대, 식장에 있는 둘의 앞날은 무조건 빛나야 하고, 손에 집어든 책은 독자로 하여금 읽어볼 마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적당한 격조와 품격을 갖춘 형식으로 축복과 독려를 전해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할지 방법의 문제만이 청탁받은 이에게 남을 뿐이다.  

하지만 주례사와 추천사, 그 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주례사는 특정인을 청중으로 하지만 추천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다. 주례사는 모인 이들을 위한 자족적인 축하연인 반면, 추천사는 상업적인 행위와 결부된다. 누군가의 추천사 한 줄이 거래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 둘은 상징 자본, 문화 자본의 측면이 함께 있으나, 주례사가 좋아서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허나 추천사는 대체로 누군가의 지갑을 여는 일로 연결된다. 추천사는 상품 구매욕을 북돋아 판매에 일조한다. 아니라면 적어도 이해관계를 수월하게 하는 과정에 관여한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런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 

물론 정확하고 믿을 만한 누군가의 추천사는 구매자 입장에서는 좋은 참조 자료다. 매대 앞에서 망설이거나 주저할 때 추천사 하나는 그 책을 선택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때문에 주례사나 추천사 모두 누가 해주냐가 중요하다. 수혜자의 사회적 지위와 수혜 대상의 질적 퀄리티가 이를 통해 확보되기 때문이다. 

내가 신뢰하고 선호하는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추천한다면 내 신뢰와 선호는 그쪽으로 쉬이 옮아간다. 그런 전이성을 이용해 개인적인 친분이나 빚 때문에 혹은 출판사의 전략 때문에 추천사를 썼다면 이는 낯익은 이를 위해 낯선 이에게 등 돌리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추천인의 감식안과 선별력에 아니 추천사 수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의 무사안일함에 실망하게 된다.

요즘 서점에 나가보라. 추천인의 지명도와 권위를 이용한 한 줄짜리 띠지부터 책표지의 현란한 추천 문구까지 구매욕을 부추기는 상술이 선을 넘었다. 이는 책의 내용까지 오염시킨다. 

“계약금은 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추천사나 해설문을 절대 내 책에 붙이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조건이다.”  

쇼펜하우어가 출판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라고 한다. 악명 높은 한 염세주의자의 엄격함이 요즘 우리 청탁 문화에 조금은 뿌려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패를 막는 소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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