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범죄' 본질 가리는 '음란물'·'포르노' 보도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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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범죄' 본질 가리는 '음란물'·'포르노' 보도 용어
UN서 '아동 성학대물' 표현 권고...'아동 이용 음란물' 법률 용어 개정 움직임
"보수적인 법보다 언론이 선제적으로 인식 바뀌야"...언론계 내부 문제 의식 생기면서 KBS 등 '아동 성 착취 영상' 표현 쓰기도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9.10.31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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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자 '국민일보' 지면 갈무리 ⓒ 국민일보
10월 25일자 '국민일보' 지면 갈무리 ⓒ 국민일보

[PD저널=이미나 기자] 

<"고작 1년6월형?" 한국인 아동포르노 사이트 운영자 처벌 강화 목소리> (10월 22일, 한국일보)

<美 15년인데 韓은 18개월...아동음란물 처벌 잣대에 여론 분노> (10월 25일, 국민일보)

<'국민 공분' 아동 음란물 유포...알고 보니 사이트 운영자> (10월 29일, YTN)

<여친능욕·아동음란물·성범죄…소라넷 운영자 징역 4년, 피해자 눈물 닦을 수 있나> (10월 30일, 아시아경제)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불법 영상물 관련 사건을 보도한 기사 제목들이다. 지난 16일에는 다크웹 기반 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한국인 손 아무개 씨가 미국으로부터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고, 29일에는 친족 성폭력이 의심되는 사진과 글이 게재됐던 불법 사이트의 운영자가 검거됐다. 30일에는 회원 수 100만 명 이상의 불법 사이트 '소라넷'의 운영자에게 법원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주목할 부분은 언론의 '언어'다. 대부분의 언론은 기사의 제목과 내용에 해당 사이트에 게재된 영상물을 '아동 음란물' '아동 포르노'로 지칭했다.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검색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30일까지 '아동 음란물'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기사는 모두 194건에 달했다. '음란물'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건 총 229건이었다.

하지만 '아동 포트노' '아동음란물' 용어가 범죄 행위뿐만 아니라 범죄의 대상이 된 아동까지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는 비판은 꾸준하게 나왔다. 

이한기 디지털성폭력아웃(DSO) 사무국장은 "언론이 '아동 음란물'이라는 표현을 쓰면 대중이 이를 그대로 인식하면서, 그것이 성폭력이고 성착취라는 인식도 흐려지게 된다"며 "특히 '음란'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음탕하고 난잡하다'는 뜻이 있어 ('아동 음란물'이라는 표현은) 아동에 대한 부정적 함의를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상품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은 한국 사회에서 이런 표현으로는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제사회에서도 대체 표현을 사용하자는 권고가 이미 나온 상태다. 지난 9월 26일 유엔 인권이사회 아동권리위원회가 '아동매매·성매매 및 아동음란물에 관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공표하면서 '아동 음란물'이라는 표현을 '아동 성학대물'로 대체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아동 대상의 성범죄 영상물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규정하고 있어 불가피하게 '아동 음란물' 표현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기자들의 해명도 있다. 

심서현 <중앙일보> 기자도 지난 28일자 팟캐스트 <들으면 똑똑해지는 라디오>에서 "독자로부터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았다"며 "취지는 이해하지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나오는 '아동 음란물'이라는 단어를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25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KBS
25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KBS

하지만 법률 용어가 개선되는 데는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언론이 먼저 '아동 성착취' 등의 표현으로 아동 성범죄의 본질을 알리는 보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실제 '웰컴 투 비디오' 사건 관련 보도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 그리고 KBS 등은 '아동 음란물' '아동 포르노'와 같은 표현을 '아동 성착취 동영상' 등으로 대체해 사용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KBS <뉴스9> '뉴스줌인' 코너에서 표현의 문제를 지적했던 신선민 KBS 기자는 "'아동 음란물'이라는 표현은 본질과는 멀 뿐만 아니라 사건의 심각성도 놓치는 표현"이라며 "(시청자의) 인식을 바꾸는 데 언어가 가장 중요한 만큼, 언론이 이걸('아동 음란물' 표현을) 보수적인 법보다 앞서 선제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이런 문제의식이 언론사 내부에서 공유된 것은 아니다. 같은 언론사가 보도한 아동 대상 범죄 영상물 관련 사건에서도 '아동 음란물' '아동 성착취 영상' 표현이 혼재된 경우가 많다.   

최근 일련의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사고, 용어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지적이 잇따르면서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법상의 용어를 '아동 성착취 영상'으로 바꾸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달 발의할 예정이다. 

법 개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아동 성범죄'에 대한 언론의 책임있는 자세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지난 28일자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법이 보수적으로 움직이더라도, 언론의 경우는 사회 진보를 위한 공론을 형성하고 법과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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