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박근혜 정부 ‘정치심의’ 받은 ‘백년전쟁’ "제재 부당"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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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박근혜 정부 ‘정치심의’ 받은 ‘백년전쟁’ "제재 부당" 판결
대법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비판적 조명한 RTV ‘백년전쟁’ “방송 심의 규정 위배 아니다”
'제재 정당' 1,2심 판결 뒤집고 파기환송...“표현의 자유 확대한 판결"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9.11.21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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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제재 명령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백년전쟁'
대법원에서 제재 명령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백년전쟁'

[PD저널=박수선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대표적인 ‘정치 심의’로 꼽히는 RTV <백년전쟁>에 내려진 제재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21일 <백년전쟁>이 방송심의 규정 ‘공정성’ ‘객관성’ ‘사자 명예훼손’ 조항 등을 위반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부터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받은 RTV가 낸 제재 취소 소송에서 제재가 정당하다는 원심 판결을 뒤집고 RTV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방송 내용의 객관성 공정성 균형성을 유지하는지 심의할 때는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의 특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지상파 등 방송 사업자가 직접 제작하는 경우나 보도 프로그램일 경우와 달리 <백년전쟁>은 공익적 인물과 공적 관심 사안을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로, 비지상파 유료매체에서 시청자 영상 제작물로 방송됐기 때문에 완화된 심의 규정을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백년전쟁>의 방송심의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해선 “방송 균형성은 역사 다큐멘터리의 경우 선거방송과 보도처럼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관점 등을 동등하게 기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의 특성을 감안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있다”고 봤다. 

또 방송 내용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역사적 인물의 재평가를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본 대법원은 “역사적 진실과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방송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된 것도 아니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채널과 프로그램 특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심의 규정 위반했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방송 심의에 법리에 대한 오해가 있고, 충분한 심리를 하지 않아 판결에 잘못된 영향을 미쳤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  

2013년 퍼블랙 액서스 채널 RTV를 통해 방송된 <백년전쟁>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을 맡았다. 

<백년전쟁>은 미국 CIA 보고서 등을 근거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하와이 깡패’ ‘A급 민족반역자‘ 등의 표현을 써가며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인물로 묘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의회에 보고된 프레이저 보고서를 인용해 경제성장의 업적을 가로챈 인물로 그리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  

평가가 엇갈리는 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백년전쟁>의 의혹 제기는 곧바로 ‘역사 왜곡’ 논란으로 번졌다.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인 이인호 전 서울대 교수가 “국가 안보 차원” 문제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 게 논란에 불을 붙였다. 2013년 8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백년전쟁>에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내리면서 전직 대통령을 부정적 시각으로만 평가해 사실 왜곡했다는 이유를 댔다.  

'역사 왜곡' 오명은 6년 만에 대법원에서 벗겨졌다.  

제재가 정당하다는 소수의견도 있었지만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백년전쟁>이 방송심의 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시청자나 시민이 직접 제작한 영상물은 지상파 등의 방송사 프로그램과 동일한 잣대로 공정성 객관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의미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판결로 받아들여진다.  

민경서 RTV 이사장이 대법원에서 '백년전쟁' 제재가 부당하다는 선고를 받은 직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PD저널
민경서 RTV 이사장이 대법원에서 '백년전쟁' 제재가 부당하다는 선고를 받은 직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PD저널

민경서 RTV 이사장은 대법원 선고 이후 취재진과 만나 “방송의 독립성과 시민 제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중요한 의미를 담은 판결”이라며 “시청자가 제작하는 퍼블릭 액서스 채널의 편성과 프로그램 다양성 등을 보장한다는 게 판결의 취지”라고 말했다.  

RTV를 변호한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법무법인 이공)은 “방송 심의 규정의 공정성 객관성과 관련한 많은 판결이 있었는데, 대법원이 이번 <백년전쟁> 판결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며 “폭넓고 다양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넓히는 쪽으로 기준을 잡아 퍼블릭 액서스 채널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의 콘텐츠 제작에도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법원이 사건을 돌려보낸 서울고법은 <백년전쟁> 제재의 정당성을 다시 따지게 됐다. 파기환송심은 통상 대법원의 취지를 따라 <백년전쟁> 제재 취소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방심위의 ‘정치 심의’는 또 한 번 철퇴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 임기 초반 방심위는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겨냥해 ‘정치 심의 ’표적 심의‘을 남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3년,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과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내보낸 CBS <김미화의 여러분> 등은 ’공정성‘ ’객관성‘ 조항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뒤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방심위는 대법원에서 뒤집힌 <백년전쟁> 판결에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전원합의체로 넘어가면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지만, 1,2심에서 승소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이길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면서 “파기환송심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판결문을 받아본 뒤 내부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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