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가 '불륜녀 찾기'라는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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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드라마 외형 보이지만 백화점 ‘VIP 전담팀’ 통해 드러난 '그들만의 세상'

SBS 월화드라마 'VIP' 현장 사진.
SBS 월화드라마 'VIP' 현장 사진.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 백화점 VIP 전담팀에서 적당히(?) 성공한 삶을 살아가던 나정선(장나라)은 이 문자 하나로 삶이 지옥으로 바뀐다.

남편이자 같은 전담팀 팀장인 박성준(이상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동료이자 친구로 지냈던 팀원들이 모두 의심스럽다. 정선과 오랜 친구이자 VIP전담팀의 에이스였던 이현아(이청아), 워킹맘으로 육아와 일에 치여 승진이 늦어진 송미나(곽선영) 그리고 백화점 시식코너에서 갑자기 VIP전담팀으로 발령이 난 온유리(표예진)에게 정선은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이쯤 되면 SBS <VIP>가 전형적인 불륜드라마가 아닐까 싶고, 실제 드라마도 ‘누가 불륜녀인가’를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인다. 매회 끝날 때마다 박성준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이현아와 송미나 그리고 온유리가 통화하는 장면을 병치해 보여주는 방식의 연출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높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흔한 불륜드라마처럼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는 VIP 전담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VIP들의 세계와 그 세계를 위해 기꺼이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전담팀 그리고 그 세계를 동경하며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는다. 

그러면서 VIP의 불륜에 눈감는 전담팀 직원의 시선과, 막상 그것이 자신의 일로 다가왔을 때 시선을 병치시킨다. 자본 앞에서 윤리적인 결정을 유예하던 정선도 남편의 불륜에 대해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그건 자본의 세계가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어떤 일도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불륜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그 자리에 ‘다른 가치’를 놓아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도 자본의 세계에 들어가면 판단의 기준은 흐려진다. 물론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욕을 할 순 있지만 직업의 세계에서는 달라진다. 정선은 누군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하나로 그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수용하며 지냈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의 민낯을 슬쩍 보게 된 것이다. 

성준은 결국 그것이 단 한 번의 사고 같은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정선은 그것을 도저히 사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정선은 그래서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보려고 한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마주쳐도 평소대로 행동하려고 한다. 하지만 일단 한 번 보게 된 진실은 되돌릴 수가 없다.

한 VIP 고객이 연인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덮으려고 하자 정선은 마침 TV에서 흘러나오는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약 파란 약’ 이야기를 통해 속내를 꺼내놓는다. 파란 약을 먹으면 믿고 싶은 세계에 남을 수 있고 빨간 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그 일화에서, VIP 고객이 ‘파란 약을 먹으면 훨씬 편했을 것'이라고 말하자 정선은 “진실을 모르고 사는 삶을 과연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되묻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진실을 슬쩍 보게 된 정선은 더욱 진실을 갈망한다.

<VIP>는 묻는다. 우리는 과연 계급과 신분이 나눠진 세상의 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매일 출근해 직장 상사에게 시달리고, 부조리한 일을 참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삶이 과연 온당한 것일까. 수평적인 관계라고 하지만 결국 돈과 권력에 좌지우지되는 삶 속에서 지킬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밖에서 만난 VIP 앞에선 최선을 다하지만 우리에게 진짜로 중요한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이 드라마가 불륜드라마로 보이지 않는 건 이 많은 질문들이 여기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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