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일상에 스며든 배우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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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여배우 회고록'이 가정에 몰고온 파장 통해 관계·진실의 의미 짚어

오는 12월 5일  개봉하는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스틸컷.
오는 12월 5일 개봉하는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한 여배우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다. 관록이 묻어나는 몸짓에 스스럼없는 태도를 보이는 여배우, 그의 이름은 파비안느이다.

평생을 영화배우로 살아온 파비안느의 회고록이 출간되고 미국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는 하나뿐인 딸 뤼미르와 배우인 사위 행크 그리고 귀여운 손녀 샤를로트가 파비안느의 집을 찾는다. 전 남편 피에르까지 찾아든 파비안느의 집은 따사로운 햇빛을 닮은 활기로 넘쳐나고 모두의 웃는 얼굴은 평온함을 안겨 준다. 

그런데 어머니의 자서전을 모두 읽은 뤼미르가 일침을 놓는다. “엄마. 이 책에는 진실이라고는 없군요. 수업이 끝난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구요.”

파비안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꾸한다. “모든 것이 다 진실일 필요는 없어. 그게 배우야.”

자신의 어린 시절, 다정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처럼 그려진 파비안느의 모습에 뤼미르는 샐쭉해지고 오히려 당시 파비안느와 쌍벽을 이루었던 다정하고 멋진 배우 사라를 추억해 낸다. 

기억은 얼마나 온전한 것일까. 또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파비안느와 뤼미르 모녀는 공유한 시간과 사람이 많다. 하지만 파비안느가 기억하는 사라와 뤼미르가 기억하는 사라의 모습은 크게 다르다. 누군가에겐 경쟁 상대이자 친구이지만 누군가에겐 한없이 상냥하고 좋은 배우다. 파비안느와 사라가 기억하는 피에르는 또 어떤가. 누군가에겐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전 남편이지만 누군가에겐 엄마 때문에 떠나간 아버지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인물, 사건, 상황은 서로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고,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바로 이 지점을 섬세하게 풀어간다.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과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이어주는 사람들을 통해 파비안느와 뤼미르의 사이를 조금씩 조율하면서 두 사람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출이다.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이 연기와 관련된 직업인 것은 또한 흥미롭다. 평생 배우로 살아온 파비안느,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뤼미르 그리고 파비안느처럼 대단한 배우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연기를 하며 살고 있는 행크까지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속한 실재 세계와 허구의 세계를 넘나든다.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뤼미르에게 써달라고 조르는 파비안느. 네가 쓴 대사를 연기하듯 말하면 되지 않느냐는 파비안느의 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늘 어느 지점에 머무르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파비안느는 어쩌면 솔직하게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대사처럼 쓰인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느낀다. 

파비안느의 부탁을 들어주며 엄마의 말투를 연구해 대사를 써주는 뤼미르의 모습 또한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한다. 누군가의 생각이나 기분을 말로 표현해주는 그의 장기는 샤를로트와 파비안느의 대화에서 또 한 번 진가를 발휘한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대사’들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전달되는 서로를 향한 위로와 진실이 무엇인지 말이다. 이다. 깔끔하고 따스한 연출이다.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를 찍고 나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바탕이 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당시 어린 아이들을 출연시키면서 ‘연기자란 무엇인가’를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연기’를 통해 모녀가 조금씩 화해해나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여기서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감독은 아역배우들과 작업할 때 시나리오를 건네지 않고 현장에서 작은 목소리로 어린 배우와 소통했다고 한다. 이번 영화에서 샤를로트 역을 맡은 꼬마 소녀와도 이 방식을 통해 연기를 이끌어 냈다고 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감독의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끌어올 수도 있겠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도 어느 순간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주어진 상황과 상대(배우)와의 대화 속에서 공동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주인공이 되는 우리 스스로도 일상의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것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성급하게 판단할 수도 없다. 오히려 연기를 통해 진실에 접근할 수 있고, 또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니. 영화 속에서 파비안느와 뤼미르는 어쩌면 이렇게 연기를 통해 서로의 진실과 진심에 다가서게 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한 마디로 우아하고 따스한 영화다. 분명히 전작들보다 환하고 따뜻해졌다. 무엇보다 카트린느 드뇌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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