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디오 큐시트] 달을 가리키는 후보와 손가락에 집중하는 유권자

ⓒ픽사베이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

불경에서 유래한 말이다. 실상, 본질, 핵심에 주목하라는 의미일 테다. 널리 애용되긴 하나 이 말은 현실에서는 반만 맞는 듯싶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누구의 것인가에 따라 사람들은 달을 볼지 말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달로 돌리려 해도, 가리키는 이의 신뢰와 권위가 전제된다. 사실, 말의 무게는 상당 부분 말의 내용보다는 발화자의 존재감에 따라 그 근수가 달리 매겨진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달이 아니라 오히려 손가락일 수 있다.

얼마 전, 편성국장 선거를 위한 공청회가 있었다. 직선제를 하다 보니 국원을 대상으로 2년마다 마련되는 자리다. 후보자들은 2시간 넘게 ‘달’을 열심히 가리켰으나 듣는 내내 예의 그 ‘손가락’에만 집중하게 됐다.

“아니, 소름...저 선배는 평소 본인의 행실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만을 핀셋처럼 콕 집어 말하는 재주가 있네.” “인력과 예산이 뻔한 살림살이, 해주겠다고 하는 건 그야말로 화수분.” “솔선수범하겠다는데, 당선 이후부터 그러겠다는 말일 테지...”

정견문을 읽어도 공청회에 참석해도 딱 “이 후보다!” 싶은 마음이 선뜻 안 든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 두 가지를 보고 결정해야 했다.

우선은 그동안 후보자들이 제작했던 프로그램의 만듦새다. 흔히, 판사는 판결문으로 기자는 기사로 자신을 드러내듯 PD는 프로그램이라 하지 않나.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이라면 제작 능력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여러 한계와 불합리도 높은 수준에서 고민했을 법하다. 국장이 돼서 그걸 조금이나마 덜어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덜어내야 할 것은 더하고 더해야 할 것을 덜어냈던 전례가 없지 않아서다.

두 번째는 경청이다. 경청은 기질이나 성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능력이다. 말로 뽐내길 좋아하는 집단에서 말의 길을 기꺼이 내어 주는 일은 돋보이는 능력이다. 왜 그런가? 잘 듣는 리더는 제기된 문제에 동참한다. 해결에 최선을 다한다. 적어도 혜택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내려보내지는 않는다. 설사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가 보인 태도에서 믿음을 얻는다. “선배는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오래된 우스개가 있다. 꿀을 바른 칼 같은 말이다.

미래를 앞장서 만드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 그 선택의 가장 믿을 만한 근거는 그 사람이 쌓은 과거가 아닐까. 신뢰와 권위는 오직 그것을 밑자리로 삼는다.

주요한 고비에서 나라면 할 수 없는 어떤 선택과 결정을 했는가. 책임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직면했는가. 불의는 참으면서도 불이익은 못 참지는 않았는가. 자신의 말의 무게를 견딜만한 신뢰의 수레를 그동안 튼실하게 만들어 왔는가. 그리니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얼마나 곧고 발랐던가.

누군가를 뽑는 일은 그 누군가의 과거를 되새기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선택권을 가진 사람의 의무는 오직 끈질기게 묻고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잠시 뒤돌아보라. 그동안 찍었던 발자국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의 발자국 향배도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닐는지. 내년 4월에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