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 
상태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 
[비필독도서 22]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 오학준 SBS PD
  • 승인 2019.12.11 14: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PD저널=오학준 SBS PD]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지만(PD로선 실격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SF 소설만큼은 좋아하는 편이다. 한때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과학소년이었던 것도 취향을 결정하는 데 일정하게 영향을 줬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SF소설의 '사고 실험'적인 성격이 나를 잡아끌었다.

다른 소설들도 그렇지 않느냐고? 맞다. 하지만 SF소설은 현실적인 한계들을 고민하기보다는 소설이 다루려는 핵심 문제에 조금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생각의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다. 발전된 과학 기술, 미래/우주라는 다른 시공간, 인간 외의 지성체의 존재와 같은 요소들이 그 재료다. 

예컨대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이 고통을 모두 짊어지는 게 옳은지,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엔 어때야 하는지와 같은 철학적 문제들을 담고 있다. 존 스칼치의 <노인의 전쟁>은 어떤가. 75세 노인 존 페리가 아내를 잃고 우주방위군에 입대하면서 '늙어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이 사회가 노인을 위한 자리를 준비해두고 있는지를 묻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SF가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약자인 동시에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의 약자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SF를 사랑하는 사람마다 사랑하는 각자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일종의 예방주사로서, 혹은 예행연습으로서의 소설이라는 점이다. 

최근에 읽은 소설들 중 이 취향에 딱 맞는 단편이 있었다.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에 수록된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 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이 소설은 '다큐멘터리'의 대본 형식으로 쓰였다. 실제 존재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듯, 독자들은 소설의 중심 문제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 소설은 과거를 완전하게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한 미국계 중국인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웨이 박사는 자신의 선조가 미국에 온 이유가, 중일 전쟁 당시 일본군에 부역한 죄로 중국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죄책감을 동력으로 삼아 하나의 기계를 발명한다.

그 기계는 과거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웨이 박사는 과거가 '직접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는 침묵할 수 없으며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무지한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과거에 벌어진 일을 보고 온 사람들의 말에 누가 수긍하지 않겠나.

문제는 그 기계가 한 번 보고 온 과거를 다시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린다는 데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 '731부대'의 만행을 보고 온 유족들은 그 참상을 위원회에서 고발했지만, 사태는 웨이 박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2014년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소가 공개한 지난 1940년 11월 중국 북동부 지린(吉林)성 눙안(農安)에서 사실상 일본군 '731부대'가 지휘했던 생체실험이었던 전염병 예방조치 자료사진. 이 기록보관소는 731부대를 비롯해 일본 세균부대들은 20여개 성, 161개 시에서 세군전쟁 범죄를 자행해 27만 명 넘게 숨지고 2370만 명 이상이 페스트에 감염됐다고 밝혔다.ⓒ뉴시스/중국 신화통신
2014년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소가 공개한 지난 1940년 11월 중국 북동부 지린(吉林)성 눙안(農安)에서 사실상 일본군 '731부대'가 지휘했던 생체실험이었던 전염병 예방조치 자료사진. 이 기록보관소는 731부대를 비롯해 일본 세균부대들은 20여개 성, 161개 시에서 세군전쟁 범죄를 자행해 27만 명 넘게 숨지고 2370만 명 이상이 페스트에 감염됐다고 밝혔다.ⓒ뉴시스/중국 신화통신

일본의 관료들은 과거를 보고온 사람의 자격과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중국의 국민들은 위대한 인민의 희생을 무력한 개인들의 감상적인 사건들로 바꿨다며 박사를 인민의 배신자라 비난했다. 미국은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았고, 각국의 지도자들은 자국의 치부가 드러나길 꺼려했다. 지도교수마저 그가 역사를 종교로 만들었다고 꾸짖었다.

지루한 역사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웨이 박사의 믿음은 순진한 것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그는 과거를 하루 빨리 정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관계의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하려 했지만, 결국 그의 기계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애물단지가 됐다. 

그의 기계는 역사가 아닌 일종의 '기적' 체험 기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기적은, 경험한 이들에게는 완전한 체험이지만 반대로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무의미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궤변이다. 유가족이 본 치떨리는 광경은 역사학자들에겐 증거조차 될 수 없었다.

그의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국제 조약이 맺어진 후 웨이 박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독자들은 그의 죽음을 통해 과거를 포착하려는 시도가, 기적을 바라는 것처럼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닫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를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소설 막바지, 웨이 박사의 아내이자 그가 기계를 개발하는 데 중대한 도움을 준 기리노 박사는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고백한다. 그녀는 남편 몰래 과거를 보고 왔다. 자신의 뿌리 역시 웨이 박사처럼 오염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기리노 박사는 자신이 역사의 진실로부터 회피하려 했고 그것이 남편을 외로움 속에 내버려두게 만들지 않았나 자책한다. 

기리노 박사의 말을 빌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깨끗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가. 오염된 뿌리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라도, 끝내 진실을 말하려는 윤리적 도약만이 이 징그럽게 꼬여있는 역사의 매듭 사이에서 신음소리를 내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보고, 말해야 합니다. 바로잡을 기회는 오직 한 번뿐입니다." 뵘가리노 입자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통받은 사람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해자들의 승리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피해자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을 때뿐이다. 

논란에 휘말릴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웨이 박사는 기계를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아이리스 장은 난징의 비극을 말했다. 그 초조함과 절박함을, 명색이 시사교양PD인 나는 얼마나 공유하고 있을까. 소설을 읽으며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일은 얼마만큼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