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방송 해직PD "재허가 보류 현준호 이사 때문...업무에서 손 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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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방송 해직PD "재허가 보류 현준호 이사 때문...업무에서 손 떼야"
'간부 일본 불매운동 비하 발언' 폭로한 뒤 해고된 노광준 PD
"독립성 취약한 민영방송 구조적 문제에 관심 가져줬으면"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9.12.13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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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방송에서 해고된 노광준 PD ⓒ PD저널
경기방송에서 해고된 노광준 PD ⓒ PD저널

[PD저널=이미나 기자] 경기방송은 간부의 일본 불매운동 비하 발언을 언론에 제보한 노광준 PD와 윤종화 기자에 대한 해고 징계를 지난 9일 확정했다. 두 사람은 11월 초 '허위사실 유포'와 '해사행위'를 이유로 징계를 받은 뒤 곧바로 재심을 신청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12일 만난 노광준 경기방송 해직PD는 재심 과정을 떠올리며 "마치 처음부터 '해고'라는 결론을 지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뻔히 예상됐던 결과긴 하지만, 정작 통보를 받고 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만 19년 5개월간 몸담은 경기방송에서 해고되기 전까지 노 PD는 경기방송의 편성 책임자로 7년, 제작팀장으로 6년을 일한 중간 간부였다. "그동안은 '언론인'이라기보단 '종업원'에 가까웠던 게 사실이었고, 정년까지 그럴 생각이었다"는 그가 현준호 당시 경기방송 총괄본부장(현 경기방송 전무이사)의 발언을 공론화한 건 해당 발언이 "방송사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KBS나 MBC도 한때 시청자의 신뢰를 잃었다가, 다시 회복하려고 한창 노력하고 있지 않나. 옆에서 봐도 (신뢰를) 잃는 건 한 순간이지만, 회복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 그 거대한 메이저 방송사에게도 그런데, 경기방송 같은 작은 방송사가 신뢰를 잃어버리기 시작하면 회복할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광준 PD는 주주, 등기이사인 현준호 전무이사가 편성부터 제작‧인사 등 경기방송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주장했다. "모든 일을 (현 전 총괄본부장에게) 보고해야 했다. 보고를 하면 구체적인 지시가 나오고 그 지시에 따라야 했다"는 게 노 PD의 설명이다. '휴일 특근수당을 주지 않겠다'는 현 전 본부장의 방침 때문에 지난 광복절에는 시사 프로그램을 사전에 녹음해서 내보낸 일도 있었다고 한다.  

ⓒ 노광준
ⓒ 노광준

'간부 친일 발언 논란'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이사회가 보인 반응에서도 현 전무이사의 입지는 드러났다. 

지난 9월 이사회는 '경기방송 전체 직원을 택할 것이냐, 현준호 총괄본부장을 택할 것이냐라고 한다면 우리는 현 총괄본부장을 택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사회가 열린 뒤 사과문을 냈던 대표이사는 돌연 사임하고, 노광준 PD와 윤종화 기자는 대기 발령을 받았다.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현준호 본부장은 오히려 전무이사로 승진했다. 상황이 180도 뒤집힌 셈이다. 

현준호 전무이사는 13일 <PD저널>에 당시 사퇴 의사를 번복한 이유에 대해 "주주들과 이사들의 만류도 있고, 회사에 계속 피해가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요구사항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고 밝혔다.

'간부 막말 논란'이 내부 고발자 해고로 이어진 경기방송 사태는 주주나 경영진의 전횡을 차단하기 어려운 지역민영방송사의 구조적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광준 PD도 "방송사가 한 사람의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인데, 오래 (경영진 자리에) 있다 보니 마치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마음대로 하려는 사유화 현상이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난 11일 경기방송에 대한 재허가를 보류하며 "경영 투명성 제고, 편성의 독립성 강화 등을 위한 계획과 개선의지, 구체적 이행계획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임원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전횡을 하고 있단 의심도 든다"는 상임위원의 발언도 나왔다. 현준호 전무이사는 사업자 의견청취를 위한 방통위의 출석 요청에 처음엔 해외출장이라는 이유로 출석이 어렵다고 답했다가, 증빙을 요구받자 '사내 문제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는 이유를 대고 출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전무이사는 "오는 23일 심사 자리에서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허가 보류 소식을 듣고 "해고만큼 가슴이 아팠다"는 노 PD는 "방통위가 재허가를 보류한 핵심 이유인 현준호 본부장은 업무에 손을 떼고, 방통위에 그동안 무엇이 잘못이었고, 앞으로 개선하겠다는 이행계획을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리랜서까지 합하면 100명 가까운 사람들의 일터고, 방송을 기다리는 청취자 분들이 계시는데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며 "재허가 과정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피말리는 과정인지 잘 알 거다. 그런데 출석을 안 하다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경기방송을 둘러싼 위기는 방통위의 재허가 보류만이 아니다. 경기도의회를 중심으로 경기방송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지면서 지난 11월 경기평택항만공사 사장은 현준호 전무이사를 거론하며 "앞으로 경기방송에 홍보비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지자체 광고·협찬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노 PD는 "지역민영방송사로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이 같은 움직임은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회사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 PD는 "첫 보도를 보고 바로 광고를 끊은 단체는 한 곳도 없었다"며 "현준호 총괄본부장의 책임 있는 사과와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광고‧협찬에 영향이 생겼다면 그건 누가 책임을 질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 노광준
ⓒ 노광준

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해고의 부당성은 소송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노 PD는 "긴 호흡을 갖고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SNS와 언론을 통해 '해고 일기'를 연재 중인 그는 최근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으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경기방송을 둘러싼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 '관심'이 중요하다는 게 그 이유다. 노광준 PD는 "한 번도 누구 물러나라 한 적이 없었던 노동조합이 현준호 총괄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두 번이나 냈다. 그만하면 젖먹이 아기가 사력을 다해 '살려 달라'고 외친 것과 같다"며 꾸준한 관심을 당부했다. 이어 "어딘가엔 우리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고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 그걸 다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냥 흘려보내도 될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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