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차별 고발' 여성 아나운서 '성유보특별상'...성차별 관행 언제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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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에 '채용 성차별' 진정한 유지은 아나운서...선정 이유 "채용 성평등, 언론 민주화 핵심 요소"
'남오여삼' 등 여성 아나운서 향한 뿌리깊은 편견과 차별..."방송사 인식 개선과 제도적 개선 뒷받침돼야"

대전MBC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유지은 아나운서 ⓒ 유지은
대전MBC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유지은 아나운서 ⓒ 유지은

[PD저널=이미나 기자]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성유보 특별상' 공동 수상자에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를 최초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한 유지은 아나운서가 선정됐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언론·통일운동가였던 고 성유보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성유보 특별상'은 매년 언론 민주화와 평화·통일 분야 발전에 뜻깊은 족적을 남긴 개인 혹은 단체에 돌아가고 있다. 

2014년 채용돼 햇수로 6년째 대전MBC에서 일해온 유지은 아나운서는 2017년 채용된 김지원 아나운서와 함께 지난 6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지만 사실상 정규직과 다름없는 업무를 수행해 왔음에도, "대전MBC가 여성임을 이유로 고용 형태나 고용 조건에 있어 차별적인 처우를 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인권위 진정 이후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 대부분에서 하차한 유지은 아나운서는 지난 9월부터 대전MBC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대전MBC는 지난 10월 "정당한 개편에 따른 프로그램 출연 계약 종료를 부당한 업무 배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뒤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오는 19일 시상식을 갖는 '성유보 특별상' 심사위원회는 유 아나운서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이 사안이 공론화되지 못한 것은 채용 불안정과 인사상 불이익 등으로 그 누구도 제대로 자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방송사 아나운서의 채용 성차별 문제를 최초로 진정한 유지은 아나운서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심사위원회는 또 "언론 민주화는 공정방송이라는 콘텐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며 "채용과 노동 등 시스템의 민주화도 포함되어야 하며, 채용 성차별 등 성평등 확보는 그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대전MBC 등 지역MBC의 채용 성차별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이 서울 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한국여성민우회
지난 10월 대전MBC 등 지역MBC의 채용 성차별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이 서울 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 또한 언론 민주화의 핵심 요소'라는 지적은 여성 아나운서를 '소비'하는 방송가의 성차별적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으로도 읽힌다. 

아나운서 직군의 경우 지상파 3사를 제외하곤 프리랜서나 계약직 등의 형태로 고용되는 비율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이 같은 배경엔 방송에서 아나운서의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도 영향을 미친다. 

한 지역방송사의 편성·제작 담당자는 "가뜩이나 어려워지는 경영 상황에서 정규직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특히 요즘엔 아나운서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는 전문 진행자를 기용하는 일이 더욱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문제는 가뜩이나 좁아진 채용 시장을 통과해도 여성 아나운서가 받는 고용 불안이 남성 아나운서보다 심하다는 데 있다. 

<한겨레>는 지난 8월 자체 취재한 결과 16개 지역MBC에서 근무하는 여성 아나운서 40명 중 정규직은 11명(27.5%)인 반면, 남성 아나운서는 전체 36명 중 31명(86.1%)이 정규직이라고 보도했다. 여성 아나운서의 정규직 비율이 남성 아나운서의 약 1/3인 셈이다.

김도희 전 TJB대전방송 아나운서도 통화에서 "남성의 경우 똑같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돼도 본인의 필요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었던 데 반해,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며 "과거 일했던 방송사에선 (여성 비정규직 아나운서가) 부당 해고된 뒤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준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방송 관계자는 "한창 아나운서에 대한 수요가 높았던 1980~1990년대는 '여성은 임신이나 출산·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때라 (여성 아나운서들이)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 인식이 문화처럼 굳어지면서 지금도 남성 아나운서는 다른 직종에 보내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 아나운서의 경우 그런 인식이 낮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성차별적인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소위 '여성 아나운서는 젊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시각이 방송가와 사회 전반에 여전히 폭넓게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유 아나운서가 인권위 진정서에 "여성 아나운서를 용역직으로 채용하는 이유는 연령을 이유로 적시에 퇴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각 방송사 뉴스의 '나이 든 남성 앵커-젊은 여성 앵커' 구도다.

앞서 2004년 김훈순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와 이규원 KBS 아나운서는 공동으로 연구한 'TV 뉴스 여성 앵커들의 직업 인식과 방송사 조직의 성차별적 관행' 논문에서 여성 앵커를 선발하는 과정의 불투명성, 경력과 전문성보다는 신선하고 젊은 여성의 미모를 중요시하는 선발 기준, 뉴스 진행의 여성 앵커의 주변화 등 성차별적 관행을 지적한 바 있다.

15년 후인 2018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양승동 KBS 사장 인사청문회에서 '남오여삼'(남성 앵커는 50대 이상, 여성 앵커는 30대 미만), '남선여후'(남성 앵커가 먼저 발언한 뒤 여성 앵커가 발언함), '남중여경'(남성 앵커가 무거운 주제의 리포트를, 여성 앵커가 가벼운 내용의 리포트를 소개함) 등의 관행 개선을 주문했다.

2017년 인권위의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실태조사' 조사 결과를 봐도 "7개 채널 저녁종합뉴스의 여성 앵커는 80%가 30대 이하고, 남성 앵커는 87.7%가 40대 이상"이었다.

물론 KBS가 최근 40대의 여성인 이소정 기자를 메인뉴스 앵커에 기용하고, 여러 방송사의 여성 아나운서들이 바지 정장을 입거나 안경을 쓰고 출연하는 등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 앵커로 발탁됐던 유지은 아나운서 ⓒ 대전MBC
지난해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 앵커로 발탁됐던 유지은 아나운서 ⓒ 대전MBC

그러나 방송사의 시도는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성평등' 흐름과 비교하면 한참 뒤쳐진다.  

한 지상파 중견급 여성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가 육성되는 구조가 아니라 소모되는 구조다 보니 회사도 당장의 젊음, 매력과 같은 부분만 취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업계 사람들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방송산업 자체가 위기를 맞으면서 이 구조를 바꾸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방송사의 인식 개선과 제도적인 방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시청자가 질려해서 (아나운서를) 교체한다'는 식의 인식도 놀랍다. 그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사용자가 조직 내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도희 전 아나운서는 "방송사 내 여성의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동안 꾸준히 이뤄졌으나, 방송사 스스로 달라지길 원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 같다"며 "방송평가 등에서 노동과 관련한 항목을 평가에 넣어야만 (차별을 시청하라는) 강제나 권고적 효과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누군가에겐 열려있는 문이 누군가에겐 그저 벽일 수 있다"며 "그 구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사실 누군가에겐 불합리하고 차별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싸워가야 한다"고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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