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S 모금 프로그램 - KBS 사랑의 리퀘스트 , 힘내세요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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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의존 한계 불구 가능성 보여...소재주의 함정 경계해야

|contsmark0| 방송의 본래적 역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모두들 우문이라 할 것이다. 사회공읻을 우선으로 하는 오락매체라 책을 읽듯이 누구든 쉽게 이야기할 만큼 그동안 빈번하게 이야기되어왔기 때분이다. 공익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이 충돌한다면 대다수 공익적 기능을 선호하고, 변명할 것이다. 공영방송의 경우 공익성은 그 본래적 존재이유라 이야기 되고, 사영방송의 경우에도 공익성을 요구받는것은 우리 사회에서 엇비슷하다. 그러나 프로그램으로 결과되는 존재이유를 살짝 들춰보면 철저히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방송의 이중성을 읽는다. 특히 소수,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보면 그 양태는 두드러진다. 연말이면 되풀이되는 불우이웃돕기 캠페인 등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방송이 앞장서겠다는 제하의 프로그램들을 종종 접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언제든 실망이 뒤따른다. 어려운 이웃들이 진정 자립할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고, 그들의 어려움이 그저 방송을 통해서 하나의 소재로 이용되고,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하나의 방송용 상품으로 이용당하는 건 아닌가하는 씁씁한 뒷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방송비평모임에서는 kbs 1tv의 "사랑의 리퀘스트"와 2tv의 "힘내세요 사장님"을 중심으로 모금 프로그램의 이모저모를 짚어 보았다. 지난해 10월 가을개편과 함께 등장한 "사랑의 리케스트"는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소재로 시청자들의 눈물과 감성을 끌어내고 전화를 통해 성금을 모으는 모금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장치로 인기연예인들의 출연과 쇼가 곁들여 진행되는데,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제작진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지난 6월말까지 32회가 방송되는 동안 모금액이 무려 63억원에 이른다고 하니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우선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낮다는 등식을 깨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출범 초기 평일 인기드라마와 맞편성된 상황에서도 한회 10만여통이 넘는 성금전화가 쏟아진 사실은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곧 어려운 이웃들의 눈물과 안타까움과 칙칙함의 범벅이지만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묘한 밀월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따르릉 전화 한통으로 손쉽게, 부담없이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tv화면을 통해서 순간적으로 100통, 200통씩 성큼성큼 올라가는 성금전화를 목격하면서 사회의 각박함을 부정하고 위안삼고 싶은 심리적 상태가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농어민이나 노인, 장애인 들 그동안 소외계층을 다룬 프로그램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소수, 소외계층 프로그램들이 왜 시청자로부터 외면받았던가 하는 점을 겸허하고도 밀도있게 동아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소재적 한계가 어느정도 인정되더라도 프로그램의 형식과 접근방식에 정성이 있다면 시청자들과 함께 거듭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읽혀진다. 다만 방송사들이 구색맞추기로 얄팍하게 편성해오던 관행을 양심있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소수소외계층 프로그램도 시청자들로부터 꼭 외면당하는 "초라한" 소재는 결코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이 푸로그램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부분적으로는 카메라 앞에 줄줄이 늘어서서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성금을 전달하던 방식을 벗어나 ars라는 전화모금을 통해 익명으로 전달한다는 것도 의미있는 장치라 여겨진다. 또한 연말이면 편성되었던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항상적으로 편성된 고정프로그램이란 좀도 눈에 띈다. 반면 소외계층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배려. 그들의 자활을 위한 구조적인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시청자들의 동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가미된 연출기법 속에 출연자들의 인격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화면처리상 동정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장치 속에서 이들의 상처받고 소외계층이라는 는 공공연한 낙인은 누가 보상받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사회라는 우리 현실은 상반된 이해를 연출하곤 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시청률로 보상받지 않으면 그다지 평가받지 못하고, 이러한 모금프로그램 또한 모금액수로 평가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아픈 현실인가? 동정을 끌어내기 위한 어려운 이웃들의 쌩한 눈을 만나자면 어디까지가 양식이고 어디서부터 상품화를 위한 연출인지 모호해질 때가 종종 있다. "사랑의 리퀘스트"에 대한 시청자들의 참여와 반응 이 예상을 넘어서자 유사프로그램의 탄생이 이어졌는데, 몇차례 일화적인 프로그램에 이어서, imf체제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돕자는 취지에서 "힘내세요 사장님"이라는 프로그램이 탄생되었다. imf체제를 맞아 어려운 이웃의 개념이 폭넓게 발전한 것이다. "힘내세요 사장님"은 단순히 모금 프로그램으로 그치기에는 상당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취지와 맞물려 좀 더 특별한 함의를 담을 수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인데,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우리들 한푼한푼으로 살릴 수 있다는 뿌듯함을 넘어 양질의 경제전문 프로그램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엿본다. 시청자들의 성금 모금에 얽매임을 넘어서 업체가 어려움에 빠지게 된 경황을 좀 더 꼼꼼히 짚으면서 한국사회에서 기업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이끌어가는데는 어떠한 요인들이 갖추어져야 하는지, 그 다양한 이유와 요인들을 점검하면서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경영문화, 그 성공적인 운영방안을 보편화하는 역할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을 거라는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경영자문가오 역할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내용성을 담보해 나간다면 공익방송에서 꼭 요구되는 좋은 경제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업체가 어려운 이유를 무조건 imf로 넘기지 말고, 그래도 무언인가 어딘가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한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을 보태어야 한다는 욕심이 인다. 더불어 새롭게 어느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뭔가 의미있는 일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로서의 의미 또한 충분히 부여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을 중심으로 사회의 공익단체와 민간단체에서 출연업체를 심사, 선정한다는 것도 공정성과 신뢰감을 주는 요인으로 보인다.
|contsmark1| 전반적으로는 이들 두 프로그램 모두 사회의 어려움을 떠안은 층은 여전히 한푼한한푼 모으는데 심혈을 기울인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우리 경제가 처한 구조적인 어려움은 국민의 책임이기 이전에 부실경영자의 책임이고 이전에 정경유착과 특혜라는 온갖 부정부패의 결과이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그들의 동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그들의 책임을 방송은 요구하지도 않는다. 늘 이렇게 문제는 말썽하지 않은 아이들이 피우고, 그 뒷감당을 크나큰 마음으로 국민들이 인내로써 감당해야 한다면 그다지 밝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그리고 imf체제는 물론 방송에도 크나큰 구조적 변화가 뒷받침되기를 희망해본다. 끝으로 양 프로그램 모두 성금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공공매체를 이용하여 시청자들의 성금을 모금했으면, 그 용도와 의도를 좀 더 분명히 하여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라 여겨진다. |contsma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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