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씬’, 사라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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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씬’, 사라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문 닫은 부산 ‘국도예술관’ 통해 되묻는 극장과 영화의 의미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 승인 2019.12.24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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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라스트 씬' 스틸컷.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라스트 씬'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진행)] 이곳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듯하다. 남의 일에 이런 저런 참견을 늘어놓는 노인도, 깔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기고 잔뜩 멋을 낸 청년도, 극장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어른 흉내를 내며 아는 척을 하는 꼬마들까지... 모두들 스크린에 정신을 빼앗긴 듯 바라보며 울고 웃고 발을 구르며 영화를 본다. 함께 감정을 나누고 경험을 쌓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하면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시네마 천국>의 이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우리’에게 시공간의 한 점을 채우는 경험으로 ‘우리’를 묶어준다는 것을. 

지금, 우리에게 극장이란 것은 어떤 공간일까, 또한, 영화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것일까. 예전 극장은 단관이었다. 대규모 좌석을 갖춘 넓은 공간, 커다란 스크린에 이야기가 펼쳐지면 사람들은 그 허구 속으로, 환상 속으로 기꺼이 빠져 들어 갔다.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축제 같았던 과거가 있었다면 지금의 극장은 일상적인 엔터테인먼트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영화도 그렇다. 한 편의 영화가 누군가의 영혼을 꿰뚫어 인생을 바꿔놓던 시절이 있었다(물론 지금도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을 테지만). 강렬함에 이끌려 영화계로 뛰어들어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하지만 어딘가 지난 시대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라스트 씬>은 어쩌면 우리에게 극장이라는 장소와 영화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산의 국도예술관이 2019년 1월 31일 휴관을 하게 됐다. 거듭된 운영난으로 더 이상 극장으로 존재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라스트 씬>은 이곳에서 10년간 일하면서 국도예술관을 지켜온 정진아 프로그래머의 한 달을 통해 상영관과 작품, 관객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공간인 서울인디스페이스와 광주극장,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공간과 관객들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시선을 우리에게 돌린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이런 단어는 어쩌면 한없이 무겁고 어둡게 느껴지기도 하겠다. 어렵고 난해하고 불편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고 한두 번쯤은 찾아보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과 부담감을 주는, 그런 영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라스트 씬>에서 국도예술관(과 다른 도시의 비슷한 공간)을 찾는 관객들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다. 그 수가 많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분명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며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국도예술관을 지탱해 가기에는 무리가 있으리라. 

국도예술관의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툭 던지듯 말한다.
 
“왜 우리가 버텨야 해? 그냥 존재하면 안 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서. 그리고 지지한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라고 이름 붙여진 영화 장르를. 의미 있는 극장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결코 사라지거나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독립예술관을 (지지해줄 수는 있어도) 지탱해 줄 수는 없다. 계속 있어 주세요, 버텨주세요, 남아 주세요, 라는 말은 그 장소와 콘텐츠를 꾸려나가고 유지하는 데는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진심으로 절실하게 그 공간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영화의 장르적 다양성을 지지하고 있다면 그 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봐야 한다. 

영화는, 만들어진 이후에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의미가 주어진다. 영화가 누군가에게 보일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대체 무엇이 되는 것일까. 

국도예술관이 휴관을 하고 관객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마지막을 맞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자체는 서운하고 아쉽지만 크게 슬퍼하고 원통해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빛과 어둠으로 채워진 필름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필름이 상영될 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일 것이다. 영화뿐일까.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곁에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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