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박예람 기자] 지난 6일 방송을 시작한 MBC 창사 특집 5부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은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를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폭력”이라고 비판하며 시청자의 공감과 분노를 끌어낸다. <휴머니멀>이 던진 화두에 동물 보호에 동참하고 싶다는 시청자 반응이 이어지면서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합성어로 프로그램 제목을 정한 <휴머니멀>은 동물의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구의 눈물' 시리즈를 제작한 김진만 PD 사단이 1년 2개월 간 4개 대륙 10개국을 돌며 완성한 작품이다.
‘지구의 눈물’ 시리즈가 환경 파괴로 인한 동물들의 고통을 다뤘다면 <휴머니멀>은 인간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동물학대와 살생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드러낸다.
1부 ‘코끼리 죽이기’에 나오는 ‘파잔’은 관광용 코끼리의 야생성을 없애고자 쇠꼬챙이로 코끼리를 찌르는 태국 전통의식이다.
태국 치앙마이에 ‘코끼리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학대로 병든 코끼리들을 돌보는 야생동물보호 활동가 생드언 차일러트는 “코끼리를 위협하지 않고 사람들이 손에 아무 것도 쥐지 않는다면 코끼리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다”며 “코끼리와 인간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이 코끼리를 학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 9일 방송된 2부 ‘트로피 헌터’에서 미국의 유명 사냥꾼 올리비아 오프레는 “야생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을 사자를 8만 달러를 지불하고 사냥하는 게 정말 안 될 일인가”라고 반문한다.
동물 학살 경험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사냥꾼의 모습은 최근 개 98마리를 안락사시킨 것으로 드러난 한 동물보호단체 대표의 이중적인 행태와 겹쳐 보인다.
<휴머니멀> 연출을 맡은 김현기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지난해 모 동물보호단체 대표의 개 안락사 문제로 사회적 공분이 일어났듯 동물의 생명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이뤄졌다”며 “이러한 시선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을 창사 특집으로 담고 싶었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동물이 무참히 쓰러지는 학대의 현장을 직접 본 프레젠터들의 눈빛과 입을 통해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프레젠터로 참여한 배우 유해진·박신혜·류승룡은 보츠나와, 짐바브웨, 미국, 태국, 일본 등 11개국에서 야생동물들과 눈을 맞추고, 밀렵꾼과 야생동물 보호 활동가들을 만났다.
“동물을 좋아하는 단순한 마음에 촬영에 응했다”는 배우 박신혜는 보츠나와에서 밀렵꾼에게 희생된 코끼리의 사체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코끼리 생태공원에서 코끼리들과 간식을 나눠먹으며 웃던 배우 유해진도 ‘파잔’으로 눈이 먼 코끼리를 보고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프레젠터 없이 현장을 조명한 ‘지구의 눈물’ 시리즈가 비극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느낌이라면 <휴머니멀> 시청자들은 프레젠터와 함께 분노하게 된다”며 “처음엔 즐거워하다가 나중에 눈물을 흘리는 프레젠터들의 감정 변화를 시청자들이 따라가며 인간의 잔인함에 분노하고,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부까지 방송된 <휴머니멀> 시청자 게시판에는 ‘코끼리 보호단체를 후원하고 싶다', '더 행동하고 알리는 데 힘쓰겠다', '시민이 동참할 방법을 알려달라'는 시청자 의견이 올라왔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9일 <휴머니멀> 방송 내용을 전하며 “잔혹한 현실은 태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코끼리쇼가 제주도에도 있음을 알리기 위해 시민분들과 함께 불매 피켓시위를 진행하는 등 코끼리학대 근절을 위한 'Free 코끼리'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알렸다. 프레젠터 박신혜가 <휴머니멀> 출연료 전액을 ‘국경 없는 코끼리회’에 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과거 동물을 구경거리로만 삼던 방송 프로그램이 최근엔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처럼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인간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동물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미디어는 동물의 시선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16일 밤 10시 5분에 방송되는 3부 ‘어떤 전통’에선 세계 곳곳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돌고래 학살 현장을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