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 새만금에서 벌이는 좌충우돌 예능 생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BS전주 ‘새만금 표류기’ 지역민 호응에 시즌3 제작까지
말 많고 탈 많은 '새만금', '숨은 예능 맛집'으로   

KBS전주 '새만금표류기 시즌3' 타이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40분 방송되는 KBS전주 '새만금표류기 시즌3' 타이틀.

[PD저널=이휘현 KBS전주 PD] “크어어어…” 연기자들이 내는 소리가 진짜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리얼한 분장은 말할 것도 없다. 새만금에 좀비 떼라니!! 촬영 전 구성안을 짜며 이 기획이 나왔을 때는 그냥 가벼운 농담 정도로 여겼다. 그 농담은 현실이 되었다.

사전에 정보를 꼼꼼히 차단했기 때문에 좀비(연기자)들이 촬영 현장을 덮쳤을 때 출연자 6명은 모두 혼비백산했다. 2019년의 어느 가을밤, 새만금 내부에서 온갖 원망을 들으며 촬영한 이 신은 지난주(1월 21일) 저녁 전북지역 시청자들에게 공개됐다. <새만금 표류기 시즌3> 제9화 ‘그 날 밤 새만금에서…’는 그렇게 전파를 탔다.

캐스팅한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 덕(?)에 시청자들로부터 무섭다는 항의 전화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제작진에게 돌아온 것은 꽤 높은 시청률(6.4%)이었다. 나름 선방한 것이다. 총 15부작인 <새만금 표류기> 마지막 시즌은 그렇게 매주 한 편씩 공개되며 지역민들에게 ‘예능 맛집’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라고 제작진은 자신한다!).

말 많고 탈도 많은 땅 새만금에 ‘표류기’라는 예능의 숨결을 불어넣게 된 연혁을 따지자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나는 <새만금리포트 2016>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었다. 사실 총국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이 기획을 맡고자 하는 PD는 KBS전주총국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십 년간 끌어온 환경논쟁은 전라북도 지역민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들에게도 이미 환멸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결국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라는 눈치게임이 진행됐고, 그 게임에서 내가 낙점됐던 것이다. 

오랜만에 진행된 새만금 다큐멘터리 제작은 ‘혹시나’로 시작해 ‘역시나’로 막을 내렸다. 여전한 환경·개발 논쟁, 당시 지역사회를 시끄럽게 하던 스마트팜 유치 문제 등등이 논쟁의 땅 새만금의 위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새만금 리포트 2016>은 그렇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작품이 되어 ‘폭망’하고 말았다. ‘역시 새만금은 안돼!’

새만금과 나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후반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문득 뇌리를 스치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새만금 내부 땅을 젊은 선남선녀들이 셀카봉을 들고 깔깔거리며 누비는 풍경!!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새만금의 이미지는 서해와 새만금을 가로지르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전부다. <새만금 리포트 2016> 제작을 위해 답사를 가기 전의 나도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전북도청 담당 주무관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새만금 내부 땅은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의 풍경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어디서도 맞닥뜨릴 수 없는 낯설고도 어마어마한 풍경이 그 논쟁의 땅 새만금에 둥지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다큐 제작 막바지에 문득 이 첫 풍경이 떠올랐고, 그 낯선 충격을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런저런 논쟁과 관점은 잠시 접어두고 젊은 친구들이 그냥 순백의 시선으로 그 드넓은 공간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새만금 내부 땅에서 그냥 2박3일 정도 캠핑하며 즐겁게 뛰어놀게 하면 어떨까. 그 모습을 ‘야외 버라이어티’ 형식의 예능물로 탄생시키면 어떨까.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새만금 표류기>의 마중물이 됐다.

그 후 ‘표류기’라는 이름에 걸맞은 틀이 갖춰지며 처음에 갖고 있던 단순한 유람기는 점점 ‘생존 버라이어티’ 형식으로 진화해갔다. 제작진이 정해준 베이스캠프를 일군의 출연자들이 계속 이동하며 ‘4박5일 100시간 동안 자급자족 생존하기’라는 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지난 2018년 방송된 '새만금표류기' 시즌2 1부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 2018년 방송된 '새만금 표류기' 시즌2 1부 방송 화면 갈무리.

2017년 9월 초, 방송인이 아닌 일반인 청년 7명을 데리고 제작진은 새만금 내부 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기도 수도도, 화장실도 없는 그곳에서 야생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4박5일간 촬영을 진행했다. 총 제작비는 4천만 원 정도였다.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체험을 공유한 덕인지 출연자들은 촬영 막바지에 아주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제작 스태프는 엄혹한 현장 상황에 다들 학을 뗐다. 촬영 마지막 날 새만금 땅을 벗어나면서 아마 모두들 ‘다시는 새만금 근처에 발을 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회당 35분 총 4부작으로 전파를 탄 <새만금 표류기> 첫 번째 시즌은 방송사 안팎에서 꽤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지역에서 이런 야생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부터 “새만금 안에 저런 곳이 있어?”라는 반응까지!

좋은 평가는 곧 두 번째 시즌 제작 준비로 이어졌다. 협찬금이 잘 붙어 제작비는 다섯 배로 뛰었다. 제작비가 풍성해진 만큼 좀 더 욕심을 냈다. 시대의 조류에 맞는 과감한 시도를 원했던 우리는, 우선 TV가 아닌 인터넷 방송 생태계에서 셀럽으로 활동 중인 인기 크리에이터들을 섭외했다. 그리고 모 유명 인터넷 방송국과의 협업을 통해 4박5일의 촬영 현장을 SNS로 생중계했다. 외주카메라 감독을 7명에서 12명으로, 현장 FD와 작가, 운행차량의 수도 대폭 늘렸다.

첫 번째 시즌 때 가장 큰 시급한 것 중 하나였던 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0인분의 밥차를 매 끼니 때마다 촬영장 근처에 배치했다. 첫 번째 시즌으로부터 1년 후인 2018년 10월 말 <새만금 표류기 시즌2> 제작진은 그렇게 또 새만금 내부를 누볐다. 회당 50분 총 4부작으로 제작된(본편 3부작에 외전 격인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4부로 특별 편성됐다) 두 번째 시즌은 이전 시리즈보다 더욱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

그리고 또 1년이 흘러 <개그콘서트>에서 활동 중인 희극인 6명으로(송영길, 정승환, 양선일, 김혜선, 곽범, 이창호) 라인업을 짠 <새만금 표류기>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전라북도 지역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여전히 낯뜨거운 이야기지만, 시청자뿐만 아니라 출연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3년 연속으로 진행된 <새만금 표류기> 트릴로지는 그렇게 슬슬 유종의 미를 거둬 가고 있는 것이다.

지역방송이 가진 현실 여건상 예능이라는 장르를, 더군다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포맷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는 쉽지 않다. 제작비 마련은 고사하고 인지도 있는 스타를 섭외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무엇보다도 지역방송 콘텐츠를 대하는 지역민들의 시선이 녹록잖다. 이런 거대한 빙벽 앞에서 우리는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로프를 잡고 발을 내딛는다. 긴 시간 누적된 편견과 선입견을 한 번에 깨기는 어렵다. 허나 숨차고 더딘 걸음일망정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꾸준히 증명해 낸다면, 언젠가는 그 빙벽도 깨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