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을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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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을 대하는 태도
[라디오 큐시트]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전태일 열사 50주기’ 등 2020년 추모의 날 '빼곡'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0.02.0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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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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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박재철 CBS PD] 새해 달력을 받으면 빨간 날의 수를 센다. 언제부턴가 신년 의례가 됐다. 2020년은 115일. 작년에 비해 이틀이 빠진다. 중뿔나게 돌아다니는 처지가 못 됨에도 뭔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올해는 유난히 기념일들이 몰려 있다. 하나 같이 무게감 있는 ‘사건’들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사고와 사건을 이렇게 구분했다. “사고는 처리해야 될 일이지만, 사건은 해석해야 될 일이다.” 교통사고처럼 우발적이고 불운한 일은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매듭짓는다.

그러나 사건의 매듭은 끊임없이 지연된다. 그 뜻과 의미를 자문하는 과정에서 삶은 사건의 전(前)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헤맨다. 사건을 기점으로 우리의 일상은 그 전과 후가 확연히 갈라진다. 사건을 되새길 때마다 갈라진 일상의 절단면에서 전해져오는 그 까칠까칠함과 물컹한 이물감이 우리를 감싼다. 2020년은 그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꽤 밀집해 있는 해다. 

우선, 올해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이다. 현대사에 굵은 글씨로 기록된 5‧18은 갚아도 갚아도 원금이 줄지 않는 빚 마냥 후대에 큰 부채감을 남긴 사건이다. 당시의 결연함이나 비극성으로 한때 거명조차 꺼려졌던 시기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는 현재화 속에서 생명력을 갖는다. 비석이나 박물관에 갇힌 역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나침반이 돼줄 열린 역사로서의 5‧18의 의미가 다양하게 탐구되어야 한다. 4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어떤 추도사들이 방송 콘텐츠로 제작되어 나올지 궁금하다. 

노동법 준수를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이 사망한 지 50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50년이면 반세기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청년 김용균의 죽음은 반세기 동안 전태일로부터 우리 사회가 얼마큼 앞으로 나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위험의 위주화’. 위험은 가장 약한 고리에 녹처럼 기생해 고리 자체를 끊어버린다.

전태일의 외침이 지금까지 소환되는 이유다. 슬픈 현실이다. 그가 심었던 노동과 인권의 나무는 올해로 50개의 나이테를 둘렀건만, 오늘날 이 땅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에게까지 그 그늘을 드리우지 못하고 있다. 그가 처했던 그때의 상황보다 조금은 나은 현실을 만드는 일, 그보다 값진 추도식이 있을까. 
  
음악계에도 올해 떠올릴 만한 인물이 있다. 바로 가객(歌客) 김현식이다. 그의 부재가 30년째를 맞는다. ‘비처럼 음악처럼’ 우리 곁에 찾아 왔다 ‘사랑했어요’라는 말을 남기며 33세의 나이에 짧은 ‘추억 만들기’를 하고, 그는 ‘이별의 종착역’으로 향했다. 블루스와 락, 발라드를 넘나들며 노래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이 된 목소리. 음악계나 방송계에서도 그를 그리워하는 헌사들이 줄을 이을 듯싶다. 

올해 클래식 쪽에서의 최대 이슈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독일에서는 베토벤의 고향 본을 매개로 ‘디스커버 베토벤’ 캠페인을 열고, 음악 인생 대부분을 보낸 빈에서는 ‘빈이 선택한 사람’이라며 심층적으로 그를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베토벤을 허브에 두고 사방으로 뻗어 나갈 연주회나 기획 특집물들이 풍성하게 준비될 것이다. 다양한 콘텐츠들을 통해 그가 왜 악성(樂聖)인지, 베토벤의 바다에 빠져 확인해 봐도 좋겠다.        

CBS는 음악 FM 개국이 올해로 25주년이 된다. 잔에 아담히 담긴 맥주 거품처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축연을 기획해야 될 숙제가 남겨져 있다. 

축하와 추모는 결을 달리하는 일이다.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더 많은 고민을 요구하는 게 추모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삶은 무언가를 잃어야 하고 떠나보내야 하며 양보하고 포기하는 일이다. 유한한 우리는 매일, 매번 이별하면서 산다. 상실을 경험한 후 이를 충분히 슬퍼하고 감정적으로 분리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것이 우울이다. 우울을 막는 것이 추모고 애도일 수 있겠다. 잘 떠나보낸 다음, 익숙함과의 결별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해가며 우리는 무언가를 조금씩 배운다. 

2020년, 어떤 콘텐츠들이 애도의 격을 높이고 우리 사회의 우울증을 치유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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