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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수(EBS 기관발전정책팀장)

|contsmark0|옳은 일 그른 일, 좋은 일 나쁜 일
|contsmark1| 일전에 언론계의 원로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평소 그 분을 먼발치에서 몇 번 뵙기는 했지만 인사를 드리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교육방송에 다닌다고 소개를 하자 그 분은 아! 교육방송 하시면서 몹시 미안해하셨다. 마땅히 열심히 도와주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몹시 민망하기도 했지만 한편 참 묘한 세상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방송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혹은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관심을 가져주지 못해 미안하다." "교육방송이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잘해내고 있는 게 참 대견하다" 그리고 나면 국회의원들도, 정부 관리도(심지어 교육부마저도). 다른 방송사 직원도. 별 상관없는 사람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결론은 하나다. "교육방송! 잘 되어야 할텐데" 하지만 교육방송은 아직 잘 되지 못 하고 있다. 기네스북이라는 게 있다던데 대한민국 교육방송도 그 한 귀퉁이를 차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방송국, 세상에서 가장 운 나쁜 방송국,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위상에 관한 논란이 거듭된 방송국, 세상에서 가장 엉거주춤한 방송국, 또 세상에서 가장 방송국답지 않은 방송국.
|contsmark2|집권당에서 이번에 교육방송공사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면 네 번째가 된다. 이것도 기네스북 감이 아닐 지 모르겠다. 89년부터 시작 되었으니까 꼭 10년 동안 같은 이름의 법률안이 네번씩 국회에 올려지는 것 말이다. 그 10년의 기다림이 이제 드디어 결실을 맺는가 싶더니 요즈음은 왠지 조짐이 심상치가 않다. 초봄부터 가슴을 졸이게 만들더니만 이제 와서 가을까지 기다려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도무지 언제 이 숨막히는 기다림이 끝날 것인지 갑갑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 기다림은 왜 이다지도 길고 질기단 말인가. 모두들 교육방송이 제자리를 잡아야한다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다들 그게 옳다고 하는데 왜 교육방송은 아직도 어두운 골목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그 인과관계를 풀 길이 없는 난해한 현실이다.
|contsmark3| 이즈음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정말이지 혹시, 교육방송이 제자리를 잡는 일이 옳은 일이기는 하지만 좋은 일은 아니어서는 아닐까?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교육방송 팔자에 큰 영향을 미칠만한 사람들에게 교육방송이 제자리는 잡는 일이 별 이익 나는 일이 아니어서는 아닐까? 혹은 손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는 아닐까? 누구에게나 옳고도 좋은 일이면 이제까지 교육방송이 피흘리고 있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세상에는 아직 옳은 일을 위해 무언가 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일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더 많은 까닭인가.
|contsmark4| 결국 옳고 그름은 이상이고 좋고 나쁨은 현실이다. 그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이 바로 교육방송이 헤매고 있는 어두운 골목인가? 정말 그런가?
|contsmark5|요괴방송
|contsmark6| 오래 전에 요괴인간이라는 텔레비젼 만화영화가 있었다. 어느 미치광이 박사가 인간을 만들어내려다가 실패해서 생긴 존재가 바로 요괴인간이다.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존재. 인간을 닮기는 했지만 인간일 수 없는 존재. 그 주제가 되는 유명한 대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나도 인간이 되고 싶다" 이다. 그 스산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교육방송이 바로 그런 처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방송을 만들어내려고 했다가 실패를 했다. 방송 비슷하긴 한데 완전히 방송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는 요괴방송. 진짜 방송이 되고 싶어 방송판 주변에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기는 하지만 아직 본바닥에 끼지는 못하는 그런 존재. 그래서 교육방송은 이렇게 외친다. "나도 방송이 되고 싶다" 그것이 바로 교육방송공사화다. 교육방송공사란 이런저런 소리 필요 없이 교육방송을 진짜 방송으로 만드는 첫 단추다. 누군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교육방송은 방송이 아니란 말인가" "지금 그 무슨 자기비하요 망발이란 말인가" 교육방송은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멀쩡한 방송이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좀 따져봐야 할 구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따져봐서 그 답이 방송쪽에 가깝게 날지 아니면 방송 아닌 쪽에 가깝게 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그걸 따질 때는 아니다. 교육방송공사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교육방송을 온전한 방송으로 만드는 길이다. 우선 그것부터 하자.
|contsmark7| 대한민국 방송을 말하기 전에, 방송의 역할과 책임을 말하기 전에, 채널정책을 말하기 전에 우선 교육방송을 진짜 방송으로 만들어 놓고 시작하자. 그리고 난 연후에야 이 나라 방송을 뜯오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교육방송이 진짜 방송이 된 그 다음날 사라진다해도 그것이 순서일 것이다. 방송구조를 제대로 만드는 일의 시작은 우선 그 대상이 모두 같은 줄에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방송인지 아닌지 애매한 방송을 놔두고 무슨 논의의 진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것은 이제 그만 하자. 지난 10년동안 그만큼 했으면 정말이지 따져볼 건 다 따져봤다. 지금 당장은 누군가 손해보는 느낌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혹 정말 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교육방송이 어찌되던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 당장은 아무 상관도 없을지 모른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런 사람이 많이 있기에 지금의 일그러진 교육방송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결코 지금 이대로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약간의 손해가 두려워 머묵거리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아무 상관이 없기에 뒷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다음부터는 솔직히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글세. 옳은 일이기는 해. 그런데 나한테 별로 좋을 것이 없잖아?""다 좋은데 그렇다고 내가 털끝만큼도 손해볼 생각은 없어""사실, 나랑은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애, 잘들 해봐" 제발 동정하듯, 봐주듯, 보태주듯, 교육방송을 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말 이제는 모두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혹시 그 동안 교육방송이 지친 몸을 이끌고 착각 속을 헤매고 다녔다면 이제 더 이상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으면 한다. 있는 그래로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말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진정으로 교육방송을 도와주는 길이다. 아니 도와주고 말고를 떠나 그게 도리다. 그리고 동시에 각자 스스로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contsmar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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