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단 한 사람을 위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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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만났다’, 단 한 사람을 위한 기술
MBC 'VR휴먼다큐멘터리-너를 만났다', '하늘나라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 상상에서 출발
수없이 머릿속에서 그린 엄마와 나연이와의 만남...평생 간직하고 싶은 순간
  • 김종우 MBC PD
  • 승인 2020.02.17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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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화면.
지난 6일 방송돼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긴 MBC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화면.

[PD저널=김종우 MBC PD]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2년 전, ‘하늘나라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마침 ‘포토리얼리스틱’CG 영상들을 보았다. 보통 CG라고 하면 후보정 작업을 생각하지만, 게임 엔진의 발전으로 인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그곳에서 움직여볼 수 있는 배경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딘지 모를 깨끗한 방이나 초원을 모사한 영상들은 현실인 듯 환상인 듯, 초월한 느낌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게임이나 롤러코스터를 많이 떠올리는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기술을 방송이 가진 보편적인 힘과 결합하면 좋은 느낌을 줄 것 같았다.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은 강한 몰입의 ‘경험’ 덕분이다. 영화는 모든 관객이 같은 시간을 체험하지만, VR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10분을, 어떤 사람은 20분을 체험할 수 있다.  VR의 아직 발견하지 않은 힘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치매 노인이 VR을 통해 바다를 보고 환호하는 장면을 보고 치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면서 기획을 꺼내놓았다. 수없이 기획안을 고치고 펀딩을 시도하고 실망도 했다. 그래도 VR을 통해 가족을 다시 만나는 그 장면을 계속 상상하면서 어떻게든 시작했다. 고민도 깊어졌다. 옆에서 동료들이 괜찮은 생각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떤 가족을 만났다. 처음 만난 엄마는 마치 자기가 잘못을 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잃은 아픔도 감당하기 힘든데 왜 저분은 죄인처럼 생각하는 걸까? 내가 다 억울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꿈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다고 했다. 천천히 다른 가족들, 아이들을 만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평화로운 일상과 슬픔이 이상하게 섞여있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엄마는 나연이를 자신이 기억해주지 않으면, 없었던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촬영을 시작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VR 체험을 만들어야 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협력업체를 찾아다녔다. 한 곳에서 해볼 수 있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 정말 하는 걸까? 이게 되긴 되는 것인가? VR영화제 등을 다니며 목표를 공유했다. ‘좋은 기억이 되도록 하는 것’. 제작진이 만들지만 또 만들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가족들의 기억으로부터 나와야 했고, 하지 못한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했다. 혼자 밤에 일어나 아이 사진을 보고 우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어야 했다. 

천천히 촬영을 진행했다. 찍은 건 별로 없었다. 가족의 집에 가면 막내가 반가워했다. 서서히 나연이의 모델을 만들어갔다. 사진, 동영상, 모델링, 표정, 시나리오, 상호작용, 배경, 모션캡쳐, 장갑, 체온...디지털 공간이라도 어떤 사람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도한 연출이 될까봐 목소리와 대사를 만들기 싫었지만, 좀 더 좋은 만남을 위해 진행했다. AI가 필요한 부분이라 예상보다 더 큰 벽에 부딪혔다. 그래도 어찌어찌 근접한 답을 찾아갈 수 있었다. 촬영과 VR 제작을 동시에 진행하는 게 힘들었지만, 결국 그 두 가지는 다른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게 느껴졌다. 겨울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생각하던 때부터 마음속에 있던 어렴풋한 이미지, 과연 그 만남의 순간은 어떨까? 수없이 묻고 상상했던 순간. 몇 달을 준비해온 그 순간을, 같이 고생해온 사람들과 함께  MBC 버츄얼 스튜디오에서 봤다. 가장 개인적인 VR체험을 만들었지만, 그 만남에 카메라맨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술이 함께했다. 마치 보통의 휴먼다큐멘터리를 찍듯 실재하는 사람과 가상의 사람을 ‘패닝’하며 감정을 담는 최초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순간을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싶다. 신기하기도 하고, 예쁜 나연이가 근처 어딘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쳐 알 게 된 것은 처음부터 엄마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그냥 ‘나연이 일이니까’ 이상해 보이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강을 건너보았다. 그리고 보여줬다. 주저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사랑을, 말 이 필요 없는, 몸이 먼저 가는 사랑을 말이다. 

짐작하기 힘든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볼 수 있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사실 그것도 만드는 사람의 오만일지 모른다. 다만 방송이 나간 후에 엄마는 괜찮았다고 웃어 보이셨고, 그제서야 뭘 만들었는지 되돌아본다. 아이들과 밥 먹기로 했는데, 담담할 아이들 앞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걱정이다.

방송을 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숨겨온 아픔을 전해줬다. 그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는 같이 고민해볼 뿐이다. 몰입도 높은 매체와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기술과 윤리에 대한 토론은  많은 전문가와 대중이 하겠지만, PD일 뿐이기에 아름다움과 아픔에 대해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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