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관객 체험의 최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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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관객 체험의 최대치 
1차 세계대전 전장에 서있는 듯한 놀라운 경험 
병사 ‘스포필드’ 처절한 사투의 결과는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 승인 2020.02.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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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 스틸 이미지.
영화 '1917' 스틸 이미지.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4월 6일. 긴장이 살짝 느슨해진 날, 병사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들 중 하나인 블레이크에게 ‘한 명 데려오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블레이크는 따로 생각할 것도 없이 곁에서 휴식을 취하던 스코필드의 손을 잡아끈다. 

그들이 불려간 곳은 에린무어 장군의 앞. 장군은 절박한 음성으로 명령을 내린다. 지금 곧 영국군의 최전선에 있는 매켄지 중령에게 내일 아침 시행하려는 공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곳에는 블레이크의 형이 있다. 이제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1600명의 목숨이 달린 공격중지명령서를 가지고 일각을 다투어 15㎞를 헤치고 가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관객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되어 함께 참호를 지나고 철조망을 지나 언덕을 넘어 말과 군인들의 시체를 건너고 벌판을 질러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실제로 자신이 영상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하다. (게다가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이라 마치 VR 게임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 느끼게도 한다.) 조마조마하다. 이 곳은 최전선은 아니므로 독일군이 없다지만 푸른 벌판 어딘가에서 그 누가 불쑥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어떤 영화가 거머쥘 것인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영화가 바로 샘 멘데스의 <1917>이었으니까. 

작품상 수상 결과와 상관없이 이 영화 <1917>은 꽤나 마음을 잡아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스코필드라는 한 군인의 임무수행 과정을 따라가며 실제로 체험하는 듯한 경험을 주는 독특한 영화이기도 하고 이렇게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로 마음 한구석에서 찌릿함을 잡아채다니 말이다. 

요크셔 연대를 만나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스코필드는 몇 가지 사건을 만나게 된다. 전장이니 당연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에 처하게 되고 여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스코필드의 마음에 하나씩 쌓여간다.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와 함께 명령을 받게 되는 그 순간부터 임무를 달성하고 주저앉는 그 시간까지 관객은 점점 그의 시점과 노출되는 상황에 동화되어 가고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마치 스스로가 1917년 4월의 어느 날,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전장을 질러간 경험을 한 듯 느끼게 된다. 

목숨을 걸고 갖은 일을 겪은 후 뻐근한 마음으로 선 스코필드에게 맥켄지는 말한다. 오늘은 이런 명령이 와서 공격을 중지했지만 며칠 뒤에 새벽에 전진하라는 명령이 올 것이라고. 중령의 그 말을 들으며 혼미해진다. 사선을 따라 명령서를 가지고 온 스코필드에게 작은 격려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다.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만 해 주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득 스코필드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의 일상에서 나름 열심을 내어 맡은 바 무언가를 충실히 하지만 왠지 그런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것 같지도 않고 눈여겨 보아주지도 않는다. 조금은 섭섭하고 조금은 서운하다. 

하긴, 스코필드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고 15㎞를 걸어온 관객은 그의 마음과 상황을 알지만  맥켄지와 그의 연대는 알 리가 없다. 알아도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임무를 잘 수행해주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족하다. 

영화 <1917>은 감정선을 크게 잡지 않았다. 드라마틱한 영상으로 마음을 홀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코필드를 따라 그의 시점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그의 마음으로 명령서를 전달하고 함께 걸을 뿐이다. 

거시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미시적 현실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 법. 그런데 그게 큰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1917>이 가진 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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