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의 희열', 씨름 중계해온 KBS만 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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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의 희열', 씨름 중계해온 KBS만 할 수 있었죠"
최재형 KBS PD "스포츠 예능의 매력은 '의외성'...'코로나19'로 무관중 결승전은 아쉬워"
  • 이미나 기자
  • 승인 2020.02.28 18: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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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씨름의 희열-태백에서 금강까지' 이미지 ⓒ KBS
KBS 2TV '씨름의 희열-태백에서 금강까지' 이미지 ⓒ KBS

[PD저널=이미나 기자]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전통의 스포츠지만, 1980년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은 씨름. 이 씨름을 주연으로 내세운 KBS 2TV <씨름의 희열-태백에서 금강까지>(이하 <씨름의 희열>)는 요원해만 보였던 씨름의 '제2의 부흥기'가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씨름의 희열>은 KBS에서 꾸준히 <날아라 슛돌이> <천하무적 야구단> <청춘FC-헝그리 일레븐>을 만들어 왔던 최재형 CP를 필두로 <청춘FC-헝그리 일레븐>을 함께 했던 박석형·신수정 PD가 주축이 돼 내놓은 스포츠 예능이었다.

28일 통화에서 최 CP는 "스포츠 예능이 갖는 큰 장점은 만들어내지 않아도 리얼리티가 살아난다는 것"이라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의외성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요하다는 점에서 스포츠보다 강력한 아이템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80kg 이하 태백급 선수 8명과 90kg 이하 금강급 선수 8명이 벌인 호쾌하면서도 섬세한 씨름에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태백급의 박정우 선수가 지난 1월 설날장사에 등극한 금강급 이승호 선수와 숨 막히는 공방전을 펼친 장면이나, 태백급의 최강자로 꼽히는 윤필재 선수가 금강급의 '황제'로 불리는 임태혁 선수를 단 1초 만에 모래판에 주저앉히는 장면은 대표적인 명장면으로 꼽힌다.

KBS 2TV '씨름의 희열-태백에서 금강까지' 스틸컷 ⓒ KBS
KBS 2TV '씨름의 희열-태백에서 금강까지' 스틸컷 ⓒ KBS

<씨름의 희열>의 탄생은 지난 2017년 대한씨름협회가 만든 '나는 씨름선수다' 홍보영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재형 CP는 "누군가가 그 영상을 보고 농담처럼 얘기를 꺼냈고, 다시 보니 관중석은 썰렁하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옛날처럼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씨름을 하고 있더라"며 "그길로 태백급과 금강급을 모아 대회를 여는 게 가능한지 자문을 구했고, 대한씨름협회를 찾아갔다"고 했다.

오랫동안 씨름의 대중화에 목말라 있던 대한씨름협회와 텅 빈 관중석에서 묵묵히 자신의 기량을 펼쳐 오던 선수들이 그렇게 <씨름의 희열> 호에 탑승했다. 운도 따랐다. 한창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던 지난해 8월, 갑자기 유튜브에서 씨름 붐이 인 것이다. '이 좋은 걸 그동안 할배들만 봐 왔다니…'라는 댓글로 압축해 볼 수 있는, '탄식' 섞인 반응도 뒤따랐다. 제작진에겐 해프닝이었지만, 공짜 홍보가 된 셈이다. 

지난해 11월 30일 첫 방송부터 제작진은 프로그램 초반 선수들이 운동을 업으로 택한 이유와 모래판 뒤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과정 등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캐릭터를 쌓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동시에 씨름선수로서의 매력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경기 장면에도 집중했다. 여기엔 "예능적인 요소를 위해 뭘 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종목 자체의 매력을 극대화해서 승부를 보려" 했던 제작진의 성향이 크게 반영됐다.

비인기 종목임에도 꾸준히, 오랜 시간 씨름을 중계해 왔던 '공영방송'으로서의 자원도 이 지점에서 빛을 발했다. 그동안 KBS에서 씨름 중계를 맡아 왔던 촬영팀이 <씨름의 희열>에 합류했고, 스튜디오 바깥엔 주요 장면 리플레이나 비디오 판독에 대응할 수 있는 중계차가 따로 붙었다. 최 CP 역시 "KBS여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강조했다.

"자료를 찾다 보면 '이런 장면까지 있어?' 싶은 것들도 있었어요. 과거 임태혁 선수의 경기를 관중석에서 바라보는 강성인 선수가 우연히 중계 카메라에 잡힌 장면이 대표적이죠. 당시 강성인 선수는 막 씨름을 시작하는 학생이었고, 임태혁 선수는 이미 잘 나가는 선수였어요. 그 장면이 눈에 띄어 프로그램에 넣을 수 있었죠."

그런 점에서 '코로나19'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무산된 결승전 공개 생방송은 제작진에게도 아쉬운 대목이다.

앞서 지난 4차전 예선에서 한 차례 공개 녹화를 했고, 관중의 함성이 그날의 경기를 더욱 뜨겁고 치열하게 만든다는 걸 경험했던 터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결승전 생방송엔 4차전에 모인 관중의 열 배 규모인, 6천 명이 모래판을 둘러쌀 예정이었다. 온‧오프라인으로 배부된 티켓도 이미 일찌감치 동이 난 상태였다.

최 CP는 "씨름이라는 종목과 '스포츠'라는 본질에 충실하려면 결승전은 생방송이어야 했다. 승부가 어떻게 날지, 경기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모해 보일 수 있었겠지만 '스포츠는 라이브'라는 생각으로 4차전 전부터 결승전 생방송을 준비해 왔다"며 "관중이 꽉 들어찬 모습이 연출됐다면 그동안 소외돼 왔던 종목의 선수들이 응원 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사는 임태혁 선수가 차지한 '제1대 태극장사' 타이틀이 제2대, 3대로 이어질 지다.

최재형 CP는 "당장 논의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가능성은 열어 뒀다. '우리 편'만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게 되는 다른 스포츠 예능과 달리, 참가한 선수 모두가 펼치는 '한판'을 응원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최 CP의 목표도 아직 100% 이루지 못했다. 최 CP는 "시청률만으로 판단하자면 <씨름의 희열>은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턱도 없다"면서도 "(<씨름의 희열>을 통해) 이제는 다른 평가의 기준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 정도는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KBS 2TV '씨름의 희열-태백에서 금강까지' 스틸컷 ⓒ KBS
KBS 2TV '씨름의 희열-태백에서 금강까지' 스틸컷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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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밀안 2020-02-29 11:28:02
흩날리는 모래는 너무 반짝이고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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