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약자가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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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약자가 살아남는 법
SBS '하이에나', 물불 가리지 않는 변호사 '정금자'가 보여주는 씁쓸한 생존방식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0.03.06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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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지금껏 배우 김혜수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늘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했다. 2013년 방송된 KBS 드라마 <직장의 신>에선 '갑질'하는 사람들에게 '을질'하는 캐릭터로 ‘미스 김 열풍’을 만들기도 했다.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의 차수현도 마찬가지다. 걸크러시 형사 캐릭터가 아니라 따뜻한 동지애를 가진 형사 캐릭터로 차수현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각인된 인물로 남았다.

 이번에 그가 연기하는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의 정금자라는 캐릭터도 ‘역대급’이다. 첫 회부터 윤희재(주지훈)라는 법무법인 송&김의 ‘금수저’ 변호사를 ‘사랑에 눈멀게 만들어’ 뒤통수를 치는 이 캐릭터는 이기기 위해 사랑까지 이용하는 인물이다. 과거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대부분 일보다는 사랑에 목매는(최근 들어와 이런 캐릭터는 거의 사라졌지만) 존재들로 그려져 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금자는 더욱 돋보인다. 일의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면 ‘가짜 연애’까지 하는 인물이라는 발칙하면서도 신선하다. 

정금자는 ‘금수저’ 변호사 윤희재가 지키려는 품위 같은 걸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또 변호사로서 지켜야할 것들도 이기기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선을 넘는다. 목적은 성공이다. 거대한 건물을 올려다보며 그 시세를 체크하고 언젠가 가질 것이라 다짐하는 이 인물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의뢰인의 더러운 일들도 기꺼이 맡아 처리해준다. 그는 자신이 태생부터 모든 걸 갖고 태어난 저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니 거기서 자신이 살아갈 방법은 그들로부터 썩은 고기라도 받아 먹어가며 성공하는 일이다. 저들이 사자라면, 그는 하이에나다. 

변호사들이 가진 자들의 부정을 변호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에서 등장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개과천선> 같은 드라마에서 변호사 김석주(김명민)는 서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기업들을 변호하며 승승장구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드라마에서도 변호사들의 그런 행위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져 결국 김석주가 사고로 기억을 잃은 후 개과천선하는 내용이 주된 스토리였다.

하지만 <하이에나>에선 이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잣대는 순진한 자들의 것처럼 담겨진다. 착한 패배보다는 악해도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고객을 위해 변호사가 해야 할 마땅한 일로 그려진다. 그래서 윤희재와 그가 속한 법무법인 송&김의 변호사들이나, 충 법률사무소 정금자 모두 정의를 위한 선택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가진 것 없는 하이에나가 사자들이 사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벌이는 이전투구를 그릴 뿐이다. 

정금자와 윤희재의 치고받는 대결은 코믹하고 흥미진진하지만 하이에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처연하고 씁쓸한 현실을 드라마는 숨겨두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자와 하이에나로 구분되는 그 클래스가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윤희재 같은 금수저 변호사 앞에서 정금자는 하이에나지만, 윤희재 역시 송필중이 이끄는 송&김이나 그들의 고객인 의뢰인들 앞에서는 그들이 던져주는 돈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하이에나다. 

일의 성공을 위해 사랑도 버리는 정금자가 비정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현실 때문에 사랑, 결혼, 육아 등을 포기하는 N포세대들에게 공감 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보이지 않은 유리천장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해도 오르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정금자의 위악은 통쾌한 한 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정금자와 윤희재는 약간의 위치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의뢰인들 앞에서 똑같은 하이에나의 위치에 서 있다는 점에선 서로 으르렁댈 게 아니라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만일 <하이에나>가 의뢰인들 때문에 물고 뜯던 정금자와 윤희재가 조금씩 자신들의 처지에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마음을 열게 된다면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말해주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결국 태생부터 다른 강자들과 대등하게 싸우며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약자들의 연대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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