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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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 오정호/ EBS 참여기획팀
  • 승인 2004.10.13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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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지난 추석 몽골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저에게는 밀린 숙제 같은 프로그램 때문이었죠.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는 소리, 가축들을 위한 자장가를 채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러시아제 군용차를 타고 몽골 서부 지역 3,000km를 돌아다녔습니다. 흙먼지 날리는 초원길도 달렸고 해발 3,500m의 눈 쌓인 산을 오르기도 했습니다. 가다가 이따금씩 만나는 유목민들의 게르(몽골족의 분해조립이 가능한 원통형의 이동식 집) 속으로 찾아가 실제 그들의 생활을 엿보고, 느끼면서 제가 찾는 소리를 얻어내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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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으로 라면을 끓어먹기도 하고, 촛불 하나로 등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화장실 사정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차문이 즉 화장실문이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는 생각지도 않았던 그 원시성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녹음도 녹음이지만, 평균 해발 2,000m의 공기 희박한 고원지대가 주는 기분 좋은 몽롱함은 황홀한 실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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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한 할머니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녀의 세 살 남짓한 손녀가 기거하는 허름한 게르를 찾았던 때입니다. 애의 어머니는 죽었는지, 어디로 도망갔는지 할머니는 애가 5개월 됐을 때부터 키워왔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다 수상한 외국인들을 보고 집으로 되돌아온 아들 역시, 삶의 빈곤함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녹음 뒤에 기념품으로 가져간 담배와 사탕, 그리고 괜찮은 손목시계를 선물하고 게르를 나섰습니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한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슨 주문 같은 말을 읊조리면서 할머니는 저희를 향해 우유를 뿌려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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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이 베풀어주는 황송한 사랑은 제 자신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세상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듭니다. 잠시 숙연해진 저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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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도시의 삶은 질서정연하게 보입니다. 바둑판같은 도로, 정확한 시계, 구획된 주거 공간, 촘촘히 사람들의 틈을 이어주는 각종 네트워크 등은 세상의 이기라는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무한속도의 질서정연한 궤도 위를 달리는 우리들은 그리 많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저마다의 목표와 행선지를 향해 달려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욕설과 경적소리, 미움과 저주를 타인들에게 퍼붓고 있을까요. 사랑도 예외는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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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는 풀이 가축을 먹이고, 가축이 사람을 살립니다. 초원에서 나는 모든 것들, 젖과 고기, 털가죽, 그리고 배설물 모두 인간들에게는 고마운 것들입니다. 그 자연의 섭리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기에 지나가는 여행객들마저 그냥 스쳐 보내지 않는 것이죠.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돼버린 오늘, 그 따사롭던 어제를 기억한다는 것이 바보스럽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곳 초원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어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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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서 가축들의 젖을 짜는 장면을 보면 참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어린 말이나 양, 송아지를 끌고 와서 네 발을 묶어 놓은 어미의 젖을 빨게 합니다. 두, 세 모금 빨게 한 후 새끼의 머리를 사정없이 끄집어내고 여인들은 어미의 젖을 짭니다. 젖 짜는 내내 어미와 새끼는 부둥켜 서있지만 서로 쳐다보지 못하고 구슬피 웁니다. 젖을 못 먹어서, 젖을 못줘서 우는 것이겠죠. 하지만 여인들은 젖을 다 짜고 난 뒤에 마치 참회하듯이 젖을 조심스레 이곳, 저곳으로 뿌립니다. 자연에서 나온 것인 만큼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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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목격한 두 번의 젖 뿌리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을 찾아온 나그네의 행복을 위하는 정갈한 마음,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가혹한 행위에 대한 순수한 죄의식은 자연과 짐승,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존재의 큰 사슬을 가늠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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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출근길에 저는 7번 정도 쓸데없는 경적을 크게 울렸고, 두어 번 욕설 비슷한 말이 혀끝을 맴돌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반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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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젖을 뿌리며 살아가볼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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