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받아쓰기' 고질병 도진 총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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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받아쓰기' 고질병 도진 총선 보도
중앙일간지·5개 방송사, 선거운동 기간 하루에 71건꼴로 막말 보도
무비판적인 중계로 막말 확산에 일조 ..."언론, 막말·혐오 표현 근본적인 문제 짚어야"
  • 이미나 기자
  • 승인 2020.04.14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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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부터 4월 14일 오전까지, 중앙일간지 11곳과 방송사 5곳 등 총 16곳에서 나온 '막말' 관련 보도 일자별 추이 그래프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14일 오전까지, 중앙일간지 11곳과 방송사 5곳 등 총 16곳에서 나온 '막말' 관련 보도 일자별 추이 그래프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PD저널=이미나 기자] 이번 총선에서도 후보자들의 '막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받아쓰기 보도는 여전했다. 선거운동이 막말로 시작해 막말로 끝났다는 비판에서 언론이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를 통해 선거 20일 전인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14일 오전까지를 기준으로 중앙일간지 11곳과 방송사 5곳(지상파 3사, OBS,YTN) 등 총 16곳의 보도를 살펴봤다. 그 결과 '막말'이 언급된 기사 수는 모두 1041건(속보 및 중복 기사 제외)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총선과 관련한 기사가 총 6811건으로, 이 가운데 약 15.3%는 후보의 막말을 다룬 보도였다. 

빅카인즈에 등재되지 않은 종합편성채널 4사의 경우 포털사이트 네이버 기준으로 같은 기간 총선 관련 보도는 1173건, 이 가운데 막말 관련 보도는 117건(약 10%)을 송고했다.

일자별로 보면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4월 2일부터 막말 관련 보도가 크게 늘었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후 지지층 결집에 나선 후보자 등이 상대 후보자나 정당을 향해 거친 발언을 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중앙일간지 11곳과 방송사 5곳의 막말 관련 보도는 총 113건으로 하루에 16.14건(1개 언론사당 1.03건) 꼴이었으나, 4월 2일부터 14일 오전까지는 총 928건으로 하루 71.39건(1개 언론사당 4.47건)에 달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 쏟아진 막말 보도가 그 전에 비해 하루 4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종편 4사 역시 선거운동 기간 전엔 하루 2.42건(1개 언론사당 0.60건, 총 17건)에 그치던 막말 관련 보도가 선거운동 기간에 들어서면서 하루 7.70건(1개 언론사당 1.92건, 총 100건)으로 3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 대부분은 후보자와 정치인의 막말을 그대로 전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에 가까웠다. 이번 총선 기간만 해도 미래통합당 공식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의 진행자 박창훈 씨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임기가 끝나면 교도소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먹이면 된다"고 말하거나 김대호 전 미래통합당 후보가 30대와 40대를 가리켜 "거대한 무지와 착각(에 빠져 있다)"고 말한 일 등이 도마에 올랐다.

보도는 문제가 된 발언을 소개하고 이 발언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과 이에 대한 미래통합당 차원의 후속 대응 등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데 집중됐다. 지난 2월 발족한 2020 총선미디어감시연대는 이 같은 정치인의 막말 등을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총선보도준칙을 발표했지만, 비판적 시각에서 해당 발언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지적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봉우 민주언론연합 모니터팀장은 "선거 기간이 되면 양 진영에서 상대방을 비판하다 나오는 막말을 언론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막말'이라고만 받아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는 발언인지 설명하지 않은 채 자극적인 발언을 단순 나열하기만 하는 보도는 조회 수를 노린 보도에 그칠뿐더러 유권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거나 정치 냉소‧혐오를 자아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 방송된 경기 부천병 후보자 초청토론회 방송 화면 ⓒ OBS
지난 8일 방송된 경기 부천병 후보자 초청토론회 방송 화면 ⓒ OBS

이 같은 보도는 정치인의 의도된 막말을 언론이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의 세월호 관련 막말 사건이 대표적이다. 차 후보의 이 발언은 단순 실언 차원의 발언이 아니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차 후보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사실을 전했을 뿐인데 매도당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고 있다.

중앙일간지 11곳과 방송사 5곳에서 지난 9일과 13일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관련 혐오 발언으로 각각 186건, 198건의 기사를 냈다. 4월 9일은 바로 차 후보가 OBS에서 방송된 후보자 정책 토론회에서 문제의 발언을 입에 올린 바로 다음날이었고, 4월 13일은 뒤늦게 미래통합당이 그를 제명한 다음날이었다. 종편 4사의 경우에도 4월 9일(18건)과 4월 8일(17건) 가장 많이 막말 관련 보도를 내놨다.

그간 이러한 '스피커 저널리즘'의 폐해는 꾸준히 지적된 바 있다.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지난 10일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 출연해 "언론이 비판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그(정치인)가 했던 말을 조목조목 그대로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그런 막말을 계속 하는 것"이라며 "비판받을 걸 알았음에도, ‘내 지지층은 굳건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데 언론이 이를(막말을) 확산‧유포하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혐오보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도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언론은 혐오발언에 대해 뚜렷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보도하는 태도가 아니라 과거의 관습대로 일단 직접 인용 부호(따옴표)를 통해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이 발언의 충실한 전달자 역할을 한다"며 "직접 인용 방식의 보도는 언론으로 하여금 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선거철에 두드러지는 막말 보도의 해악을 언론이 돌아봐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이봉우 민언련 모니터팀장은 "이용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정치권의 막말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말고 막말에 대한 문제의식을 (언론이) 드러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황교안 후보가 텔레그램 대화방 성 착취 사건에 대한 질문에 '호기심에 들어간 사람에 대한 판단은 달라야 한다'고 답했던 일은 근본적 배경까지 짚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4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검정삼거리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종로구 후보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를 비롯한 후보들의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뉴시스
제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4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검정삼거리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종로구 후보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를 비롯한 후보들의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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