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 익숙해서 지나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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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 스틸컷.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 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하얀 바탕에 얼룩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지금 교장선생님 집에 있다. 그런데 고양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표정은 마뜩치 않다. 

그 고양이는 아내가 생전에 귀여워해 제집처럼 매일 찾아든 길고양이였다. 아내와 사별한 후 마음이 적적한데, 이 고양이는 계속 이 집을 드나들고 있으니 교장선생님의 마음에 흡족할 리 없다. 이제 그만 오라고 고양이가 드나드는 구멍을 막아보지만 요 녀석, 어떻게 들어왔는지 여전히 마루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볕을 쬔다.

교장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뒤로 하고 우리는 살짝 고양이의 뒤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선생님 댁에서는 고양이를 ‘미’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곧 이 고양이가 여러 사람의 사랑과 신뢰를 얻고 있으며 각자 부르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장선생님의 부인이 다니던 미용실에서는 반가운 목소리로 ‘타마코’를 맞아 주고 예쁜 방울을 달아준다. 한참 귀여움을 받던 고양이는 시간이 되었는지 슬쩍 일어나 경쾌한 방울소리를 남기며 문구점으로 향한다. 문구점에서 일하는 여자는 고양이를 ‘솔라’라 부르며 한참 마음을 준다.

어둑해진 시간, 고양이는 어느새 버스정류장 벤치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버스가 도착하고 소녀가 내린다. 고양이를 보고 ‘치히로‘라 부르며 반가워한다. 아마도 ’치히로‘는 소녀가 마음을 털어놓고 위안을 받는 상대인 듯하다. 

고양이 미 또는 타마코 혹은 솔라, 치히로를 따라 다니다 보니 어느새 밤이다. 온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받는 이 고양이의 일과는 이렇다.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 스틸컷.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 스틸컷.

동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 길고양이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다는 것을. 그래서 목숨을 부지하고 매일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스스로도 이 고양이를 귀여워하고 있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 길고양이가 어떤 이름들로 불리고 있는지. 이 고양이가 이 곳을 떠나서 어디로 향하는지. 이 고양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지.

교장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아내도 없는데 고양이 ‘미’는 자꾸 찾아오고 그 마음을 견딜 수 없어 고양이가 오지 못하게 틈을 막아버렸다. 이제 후련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찾아든 걱정과 근심이 말이 아니다. 교장선생님은 뒤늦게 ‘미’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느끼고 발 벗고 고양이를 찾아 나선다. 

교장선생님은 오래전부터 롤라이플렉스로 사진을 찍어왔다. 그 사진들은 선생님의 주변과 일상을 담은 것이지만 사료로서도 작품으로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사진정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일상의 기록이라는 말과 다름없으리라. 아내가 고양이를 안고 찍은 사진을 보자면, 그의 일상 속에 아내가 있었고 아내가 보살피던 길고양이가 있었다. 그래서 아내의 사후 남겨진 길고양이는 선생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없으니 보살필 일도 먹이를 줄 일도 잠자리를 제공할 일도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고양이를 쫓아버렸지만 그의 마음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양이를 찾는 일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에 관련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길고양이 한 마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선생님의 사진 속에는 그렇게 시간과 소중한 존재가 담겨 있다. 그래서 문을 닫으려는 빵집 주인은 선생님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길고양이 ‘미’도 그의 삶의 한 조각이 되어 있었다. 고양이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그는 깨닫는다. 고양이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고양이가 있는 자신의 일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정하고 다감한 이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보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고나 할까. 따스한 힘을 가진 영화다.


               글.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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