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김경록 인터뷰' 재심 인용한 방심위, 원칙 없는 갈지자 심의
상태바
KBS '김경록 인터뷰' 재심 인용한 방심위, 원칙 없는 갈지자 심의
'관계자 징계'서 두 단계 낮은 법정제재 '주의' 의결...방심위 재심 인용은 4년 만
'김경록 의견서'에 강경 발언 쏟아낸 위원들, '보도 내용만으로 심의해야' 입장 바꿔
  • 이미나 기자
  • 승인 2020.04.27 2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심위가 재심을 거쳐 제재 수위를 '관계자 징계'에서 '주의'로 낮춘 KBS '뉴스9' 김경록 인터뷰(2019년 9월 11일 방송) 관련 보도 갈무리.
방심위가 재심을 거쳐 제재 수위를 '관계자 징계'에서 '주의'로 낮춘 KBS '뉴스9' 김경록 인터뷰(2019년 9월 11일 방송) 관련 보도 갈무리.

[PD저널=이미나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KBS의 '김경록 PB 인터뷰'에 대한 제재 수위를 기존 '관계자 징계'에서 '주의'로 낮췄다. 같은 법정제재이긴 하지만, 방송사의 재허가·재승인에 영향을 미치는 방송평가에서 관계자 징계는 벌점 4점, 주의는 벌점 1점으로 차이가 크다.

27일 방심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해 왜곡 논란을 부른 KBS <뉴스9>의 정경심 교수 자산관리인 인터뷰 보도에 대해 취재진이 김경록 PB의 말을 과도하게 해석해 결과적으로 사실을 오인하게 했으나, 명확히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같이 결정했다.

지난 2월 전체회의에서 관계자 징계를 결정하는 데 주요하게 영향을 미친 것은 김경록 PB가 방심위에 제출한 의견서였다. 이 의견서에서 김 PB는 KBS 취재진이 검찰과의 관계를 들어 인터뷰에 응하도록 압박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앞서 <뉴스9>를 심의한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에서 의견진술 차 출석한 KBS 관계자들은 보도에 흠결은 있을지언정 검찰과의 유착이나 고의가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방송소위 위원들도 '선택적 받아쓰기' 등 취재관행에서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악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체회의를 앞두고 제출된 김 PB의 의견서는 위원들의 입장을 뒤바꿔 놨다. 김 PB의 주장을 상당 부분 사실로 받아들인 위원들은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내용에 따라 고의적‧악의적으로 취사선택했다. 보도 치욕사 한 페이지에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의견서를 보면 이 기사는 기획기사라는 게 선명해진다"는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며 관계자 징계를 내렸다.

이 같은 입장은 27일 다시 한 번 뒤집혔다. KBS 측이 김경록 PB가 지난해 말 KBS 시청자위원회에 보낸, '취재진이 악의적으로 인터뷰를 이용했다거나 검찰과 내통했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추가로 제출하면서다. 이 의견서를 받아본 위원들은 '김 PB가 서로 다른 내용의 의견서를 냈다면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련의 과정으로 볼 때 방심위는 당초 김경록 PB의 의견서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KBS에는 이에 대한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부실 심의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KBS가 재심을 청구하며 지적했던 것도 김 PB의 의견서에 대한 KBS의 입장을 방심위가 듣지 않아 절차상 하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이날 강상현 위원장도 전체회의 서두에서 "특정인의 의견서가 제출돼 영향을 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생각의 차이였겠지만, 큰 흐름에 있어 판단하는 데 추가 의견진술을 듣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위원들은 '의견서의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고, 보도 내용 자체로만 심의해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그러면서 앵커가 김경록 PB를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이 아니라 '조국 교수의 자산관리인'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을 객관성 조항 위반의 사례로 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는 지난 2월 전체회의 당시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사실이다. 앞서 자본시장법 위반을 지적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KBS 보도의 어떤 부분이 객관성 조항에 위배됐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심위가 재심에서 제재 수위를 낮춘 건 지난 2016년 MBC <내 딸, 금사월>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방심위가 이번에 KBS의 재심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심의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와 '부실 심의'를 인정한 꼴이 됐다.     

'관계자 징계' 의결 이후 심의 내용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비판했던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론연대)는 제재 수위 조정에 대해선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본질적 문제가 해소되진 않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비판을 일부나마 수용해 제재 수위를 내린 것 자체는 전향적인 결정이라 할 만하다"라면서도 "'본보기를 보인다'는 식의 전형적 과잉심의라는 측면에선 왜 (<뉴스9가>) 법정제재를 받아야 하는지 여전히 납득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날 KBS를 대표해 출석한 엄경철 보도국장은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책임감은 무겁고 크다고 생각한다.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불거진 논란과 문제제기를 깊이 성찰하겠다"며 "출입처 제도뿐만 아니라 보도 방식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기존의 제작 매뉴얼과 원칙들이 현장에서 좀 더 중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재심 결과에 따라 소송 가능성까지 암시했던 KBS 취재진은 회사와 논의 후 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찬 처장은 "본질적으로 (이번 심의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소송의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