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패널 창고에 '빼곡'...위험천만한 드라마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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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패널 창고에 '빼곡'...위험천만한 드라마 세트장
대부분 드라마 경기도 남양주·파주 등 창고형 스튜디오에서 촬영
세트 설치 용이하고 저렴...드라마 제작 편수 많은 경쟁 환경도 한몫
"스태프 생명권 직결된 일터...안전성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 김윤정 기자
  • 승인 2020.05.08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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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영상 캡처) ⓒPD저널
29일 오후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영상 캡처) ⓒ뉴시스

[PD저널=김윤정 기자] 지난 7일 오전, 신작 드라마 세트를 짓는 공사가 한창인 파주의 한 스튜디오. 샌드위치 패널이 48명의 사상자를 낸 이천 물류 창고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지만,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대형 창고에는 드라마 세트장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주범으로 꼽히는 샌드위치 패널은 드라마 촬영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재다.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드라마 촬영 현장의 안전을 위해 샌드위치 패널 스튜디오의 이용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립식 건물 자재로 널리 알려진 샌드위치 패널은 얇은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을 넣은 건축용 자재다. 경제적이고 시공이 편리해 경기도 파주, 남양주, 용인, 양주 등에 소재한 대형 드라마 세트장에서도 흔히 볼수 있다. 제작사는 부지가 넓고 층고가 높아 세트 설치가 용이한 데다 임대료도 저렴해 창고형 스튜디오를 선호한다.

드라마 촬영 준비에 한창인 세트 장 내부 모습.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창고형 건물 안에 나무로 만든 세트가 빼곡하다. ⓒPD저널
드라마 촬영 준비에 한창인 세트장 내부 모습.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창고형 건물 안에 나무로 만든 세트가 빼곡하다. ⓒPD저널

 

하지만 샌드위치 패널은 화염에 취약해 연소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데다, 유독 가스를 대량으로 발생 시켜 화재 발생 시 심각한 인명 피해를 일으킨다. 소방청이 운영하는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샌드위치 패널 구조 건물에서 2015년 3270건, 2016년 3472건, 2017년 3784건, 2018년 3650건, 2019년 3309건이 화재가 발생했다. 2020년 5월 5일까지 발생 화재만 1324건에 달한다. 해당 기간 샌드위치 패널 건물 화재 사상자는 1000명이 넘는다.

드라마 세트장 역시 화재 발생 위험이 큰 환경이다. 목재, 페인트 등 인화 물질이 많이 사용되고, 조명 등 고압 전기를 쓰는 일이 많아 스파크가 잘 튀고, 먼지와 분진이 많다. 드라마 세트장은 이동 통로가 좁고 어지러워 대피도 쉽지 않다. 지난 2014년 JTBC <하녀들> 세트장 화재 당시 순식간에 번진 불길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스태프 한 명이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해당 세트장 역시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창고 안에 설치돼 있었다.

드라마 세트장의 화재 취약성은 지난 2016년 tvN 드라마 <화유기> 스태프 추락사고 당시 진행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조사 당시에도 지적된 바 있다. 당시 근로감독 현장을 참관한 언론노조는 “언제든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제작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화유기> 제작사는 벌금형을 받았다. 

드라마 관계자들에 따르면 <화유기> 사고 이후 소방안전점검, 안전관리자 배치 등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화유기> 사고 이후 촬영 전 현장에서 현장 책임자와 안전관리자가 같이 세트 안전 점검을 하고, 스태프 안전 교육도 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세트장으로 쓸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다”면서 “샌드위치 패널이 아닌, 제대로 지은 세트장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세트장 수는 적고, 제작되는 드라마 영화 편수는 많다. 그러다 보니 대안으로 대형 창고를 대여해 세트장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파주에 위치한 O세트장. 입구에 산업안전보건법 안내 내용이 부착되어 있다.
파주에 위치한 O세트장. 입구에 산업안전보건법 안내 내용이 부착되어 있다. ⓒPD저널

드라마 촬영 현장은 화재에 취약한 만큼 화재 예방 교육과 처벌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화재 감시자 배치, 소화기 설치 등 기본적인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장이 많다”면서 “규정을 강화해도 그 많은 현장을 모두 지키고 감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규정을 어긴 것이 적발됐을 때 처벌을 강력하게 하고, 전 스태프를 대상으로 화재 방지 교육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창고형 세트장을 이용하는 관행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물류 창고 화재는 경제성만을 추구한 자재의 사용이 얼마나 큰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준 사고”라면서 “세트장은 스태프들의 생명권과 직결된 일터이니만큼 경제성과 편리성이 아닌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는 일하는 사람의 안전보다 경제적 효율을 더 우선하는 많은 노동 현장이 있다. 방송가도 그 중 하나”라면서 “이제라도 제작 환경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하지 않는 세트장 건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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