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의 시대’ 여전히 유효한 리영희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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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의 시대’ 여전히 유효한 리영희 사상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 10주기 맞아 기념 세미나 열려
박영흠 교수 "전통적 언론 '객관주의 저널리즘' 우상 무너뜨려야 "
  • 이미나 기자
  • 승인 2020.05.08 2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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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리영희재단이 주최한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 세미나가 열렸다. ⓒ PD저널
8일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리영희재단이 주최한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 세미나가 열렸다. ⓒ PD저널

[PD저널=이미나 기자]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기자 리영희'의 눈으로 지금의 언론 지형을 바라보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전통적 의미의 언론이 신뢰의 위기를 겪고, 그 대안으로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탈언론'마저 집단적 확증편향을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임을 강조했던 리영희 선생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는 8일 리영희재단이 주최한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 세미나에서 "'빼앗은 쪽의 입장'이 아니라 '빼앗긴 쪽의 입장'에 서서,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리영희 선생의 언론 사상은 언론이 위기에 빠지고 디지털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탈진실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지금의 언론 지형을 신문과 방송 등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가 대표하는 전통적 언론과 소셜미디어‧팟캐스트‧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둔 탈언론의 대립과 경쟁으로 규정하고, "전통적 언론의 권위와 영향력이 소멸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대안적 언론상이 등장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재 저널리즘 위기의 본질"이라고 진단했다.

이 가운데 전통적 언론의 경우, '기레기'라는 멸칭이 널리 쓰일 정도로 불신과 혐오에 직면하고 있다. 1988년 <한국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리영희 선생이 사용했던 '언롱(弄)인'이라는 표현은 마치 지금의 위기를 내다본 듯하다.

우상 타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기자들에게 '독립적‧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기자'가 되기를 독려했던 리영희 선생의 관점에 비춰, 박영흠 교수는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자신의 지식과 양심의 부족함을 객관주의라는 전략 속에 감추고 예민한 문제는 기권하면서, 그것을 전문적 저널리즘으로 포장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전통적 언론의 '객관주의 저널리즘'이라는 우상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자들이 일상적이며 관습적이거나 정파적으로 이뤄지는 비판 대신 진실 추구를 위한 비판을 위해, 취재원의 입만 바라보는 '단독' 경쟁에 몰두하기 보다는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며 지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때 시민들이 전통적 언론의 효능감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전통적 언론의 위기에서 반대급부로 확대된 '탈언론' 현상 역시 아직은 대안적 공론장으로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리영희 선생이 언론이 "진실을 정확하게, 이성으로 공정하게, 편견 없이, 지배자나 강자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과 공공의 현명한 판단 자료가 되는 양질의 정보를 확고한 책임감을 가지고 불편부당한 자세로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 점에 비춰봤을 때, 현재로선 긍정적인 평가만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게 박 교수의 평가다.

박영흠 교수는 "(탈언론은) 시대의 진실을 총체적으로 간파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론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공통적 기반으로서의 사실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진영논리에 따라 진실을 상대화함으로써 진실에 대한 열망과 노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면서도 "본질적으로 풍부한 민주주의의 잠재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탈언론을 더 많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우리의 필수적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는 '전통적 언론'으로 분류되는 언론사 출신의 최승호 <뉴스타파> PD(전 MBC 사장)와 정필모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인(전 KBS 부사장)이 각각 자리했다. 그런 만큼 토론 역시 전통적 언론에 대한 비판과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집중됐다.

정필모 당선인은 언론 이용자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KBS에 소위 말하는 개혁적 경영진이 들어서고 제작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음에도 바깥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뉴스를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굳어진 조직 문화에 있다. 제도권 언론은 기득권을 옹호할 수밖에 없고, 이를 비판하는 언론도 기득권이 만든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며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고, 관행과 조직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는 (언론) 바깥에서 충격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입성을 앞두고 있는 정 당선인은 "지배구조만 바뀐다고 KBS가 정치적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시민들의 비판과 감시, 그리고 격려"라며 "국회에 들어가면 공영방송 이사회나 사장 선출 과정에서 지역과 시민사회 대표자, 직능별 대표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다짐했다.

최승호 PD는 리영희 선생이 뛰어난 기자이자 지식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그의 탐구정신에 기인했다고 봤다. 평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리영희 선생의 모습을 후대의 언론인들 역시 곱씹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최 PD는 "부끄럽지만 지금의 언론은 하루에도 인터넷에 기사를 몇 개씩 써 가며 판갈이를 한다"며 "리영희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왜 언론인이 되려 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승호 PD는 "오늘날의 언론 현실에 시민들이 실망하고 있지만, 또 한편에선 리영희 선생을 닮고 싶어 하는 언론인들이 있다"며 "과거 언론에 문제가 많았지만, 이를 제대로 바꾸겠다고 나선 지는 이제 2년가량 됐다고 생각한다. 잘하고 있는 부분들과 나아지고 있는 부분들은 또 그것대로 평가해 줄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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