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꼰대 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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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꼰대 수칙
[라디오 큐시트] 난생 처음 들은 '꼰대' 소리에 받은 충격이란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0.05.2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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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부터 방송하는 MBC '꼰대인턴' 사진. ⓒMBC
20일부터 방송하는 MBC '꼰대인턴' 사진. ⓒMBC

[PD저널=박재철 CBS PD] 후배로부터 꼰대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생애 처음이었다. 처음이 주는 강도는 생각보다 컸다. 꼰대! 누군가를 향해 하기는 자주 했어도, 듣는 처지가 되고 보니 당황스러웠다. 올 게 오고만 것인가. 사회성의 죽음을 가리키는 ‘꼰대’ 선고 앞에 한순간 망연자실해졌다.

잊으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픈데 표가 나지 않는 내상(內傷)으로 절치부심하던 차에 한 신문의 칼럼이 위안 같은 어떤 통찰을 주었다.

“차라리 구체적인 작은 무언가를 쌓아나가는 일에 집중하자. 느리고 갑갑하고 짜증나고 화나더라도, 당장 눈앞에 똑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도록 하자. 그러다 어느 날 되돌아보면 진보해있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는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진보란 천장을 뚫는 게 아니라 바닥을 높이는 작업일지 모른다.”

<조태성, ‘진보란 무엇인가’(한국일보 5월18일자)>

내가 꼰대인가 아닌가에 골몰하지 말자. 꼰대 짓을 하나둘씩 줄여나가자. 마지막 문장이 특히 울림이 컸다. “바닥을 높이는 일을 하자.” 두 발을 딛고 선 발밑 땅을 단단히 다지고 한 뼘이라도 높이는 구체적인 일에 힘쓰자. 그리고 실천하자.

무엇이 첫째일까? 독선 제거다. 독선이 독소다. 꼰대라 쓰고 독선(獨善)이라 읽는다. 독선은 “선을 홀로 취한다”로 풀이하면 어떨까. 자기만 옳다고 뼛속까지 믿는 족속이 꼰대다. 나는 선이니 당연히 상대는 악이다.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소유자.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면 꼰대는 민주주의와의 양립이 힘든 유형이다. 내 기준에 비추면 대개가 미덥지 못하고 하찮기 마련이니 자연스레 간섭하고 힐난하며 훈육한다.

그러니 첫 번째는 내 생각이 독선적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검증과정이 필수다. 판단의 객관성, 공정성을 부여해 줄 만한 주위의 신뢰할만한 조언자를 찾자. 자기 객관화를 위해 귀 기울일 만한 조력자를 확보하자.

둘째로 거절당할 용기를 갖자. 작가 김영하는 “우리나라 기성세대가 성공에 목을 맸던 이유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갈파했다. 거절의 입에 시멘트를 바르는 원천봉쇄가 성공일 수는 없지 않은가?

권위와 나이로 짓누르다가 상대가 거절하기 전에 먼저 상대를 거절하면서 쌓은 인간승리의 탑이 ‘꼰대탑’이다. 경청하고 공감하기보다는 타인에 대해 경시하고 둔감하다. 거절이 다반사인 일상이 되도록 내적 근력을 키우자.가장 보통의 존재인 나, 보통의 존재가 그러하듯 거절 좀 당하면 어떤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셋째, 지갑은 열고 입은 닫자. 나이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변해도 이건 안 변한다. 마음 가는 곳에 돈이 간다. 금전에 실린 선한 마음이 상대편에 안착하면 꼰대 바이러스는 박멸한다. 쾌적한 환경에서 질병은 근절된다. 신경을 쓰지 말고 돈을 쓰자. 돈은 안 쓰고 신경만 쓰는 이에게선 셔츠 단추를 뚫고 터져 나온 뱃살의 흉물스러움이 묻어난다.

독선적인데다 상처받기 쉬운 멘탈에, 입만 살았다는 꼰대. 그렇다고 너무 야박하게 타박만 하진 말자. 우리 모두는 꼰대의 잠재태, 가능태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치열한 적자생존 경쟁 왕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에 밴 아비투스의 적나라한 발현으로 받아들이자. 존재감을 확인해야 안심하고, 본인의 그늘이 넓고 깊다고 착각해야 보람을 느끼는 슬픈 프랑켄슈타인.

허나, 살다 보니 꼰대라고 욕먹어도 꼰대가 되어야 할 순간이 있긴 하더라. 불의에 침묵하면서도 불이익에는 예민한 후배들을 볼 때, 용기와 만용, 겸손과 비굴, 실력과 요행 둘 사이를 혼동할 때, 책임질 일에는 꼴찌인데 권리 주장에는 우사인 볼트인 이들을 볼 때, 입술이 천근만근이어도 한마디를 안 할 수가 없더라. 꼰대는 비단 나이의 문제만은 아닌 듯싶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소설의 구절을 인용하면 빼박 ‘꼰대 인증’이려나. '아, 역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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