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현실과 동떨어진 '외주제작 의무편성 완화' 거듭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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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현실과 동떨어진 '외주제작 의무편성 완화' 거듭 추진
경쟁제한 규제 개선 과제로 선정..."주시청시간대 의무편성비율은 폐지해야" 주장
독립제작사·독립PD들 반발 거세...방통위·문체부도 '반대' 의견
  • 이미나 기자
  • 승인 2020.05.21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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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12년 만에 다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 적용되는 외주제작 의무편성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의견을 요청했다. ⓒ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12년 만에 다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 적용되는 외주제작 의무편성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의견을 요청했다. ⓒ 뉴시스

[PD저널=이미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 적용되는 외주제작 의무편성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의견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외주제작 의무편성 규제 완화'를 주장한 것은 지난 2004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다.

공정위는 올해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 과제의 하나로 외주 의무편성 규제 완화를 선정하고 5월 초 방통위에 '외주 의무편성 규제 완화 및 주 시청시간대 의무편성비율 폐지' 동의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냈다.

현행 방송법은 지상파 및 종편의 경우 순수 외주제작물을 총 방송시간의 35% 이내에서 편성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주시청시간대(평일 오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주말 및 공휴일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의 의무편성비율은 15% 이내다. 현재 대통령령 및 방통위 고시에 따른 지상파와 종편의 순수 외주제작물 편성비율은 16~35%, 주시청시간대 의무편성비율은 10%다.

2018년 방송사업자 편성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KBS 1TV 33.7%, KBS 2TV 51.0%, MBC 49.9%, SBS 36.0%, EBS 28.7%(2017년 하반기 기준) 등 지상파는 방통위가 정한 편성 비율 기준고시를 6~16%p가량 상회했다. 

공문 내용을 살펴보면 공정위는 외주 의무편성 비율이 "방송사업자들의 자유로운 프로그램 선택을 제한하고 방송프로그램 제작·공급 시장의 경쟁을 왜곡"하고 "동일한 방송시장에서 외주제작 편성규제를 받지 않는 유료채널들은 지상파나 종편보다 편성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외주 제작산업의 활성화는 현행과 같은 편성비율 규제보다는 "진흥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4년과 2008년에도 공정위는 같은 내용을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 과제로 선정해 외주 의무편성 규제를 손질하려 했으나, 업계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무산된 바 있다.

12년 만에 다시 '외주 의무편성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엔 OTT 산업의 성장도 자리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시장경쟁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OTT도 방송사도 사업자"라며 "방송통신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모든 사업자들이 경쟁체계로 돌입하게 되는 만큼 OTT 산업의 성장 흐름에 맞춰 규제를 하향평준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지난해 공정위가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서강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뒤 작성한 <OTT 산업의 급성장에 따른 방송매체산업의 경쟁상황 연구> 보고서에서도 외주 의무편성 규제와 같은 방송편성규제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위해 설계된 측면이 강한 만큼 '비경제적 규제'로 분류되지만, "방송매체시장에서의 경쟁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점에서 그 규제가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방송사 외주제작을 맡고 있는 독립제작사 및 독립PD들은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반발했다. 방통위는 관련 단체들에 공정위 공문을 회신하기 전 의견을 취합을 요청했는데, 모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유관 부처라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방통위의 의견 요청에 관련 단체들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통화에서 "<겨울연가>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 한류를 견인한 드라마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외주제작시장 활성화로 인한 제작사 간 경쟁 체계가 만들어진 결과"라며 "현행 의무편성 관련 규제가 완화될 경우 방송사가 설립한 몇몇 대형 제작사 위주로 시장이 재편돼 독과점 시장이 생겨나고, 그 아래 영세 제작사들은 '재하청' 업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덕신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사무처장도 "지상파 수익 감소로 자체제작 비율이 늘어나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제작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외주 의무편성) 규제까지 완화한다는 건 시장을 고사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시장 내 공정거래 질서가 아직도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생겨난 '해프닝' 같다. 지난 2017년 공정위를 포함한 정부 5개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대책부터 제대로 이행하는 게 먼저"라고 꼬집었다.

'규제'가 아닌 '진흥'을 통해 외주 제작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공정위의 방안 또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지원준 한국독립PD협회 정책위원장은 "현재의 외주제작 진흥사업 예산은 미미한 상황"이라며 "공정위가 앞장서서 해당 예산 확대를 위해 기획재정부와 국회를 설득할 의지나 능력도 없으면서, '규제가 아닌 진흥'으로 해결하라는 식의 발언은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방통위는 각 단체들과 문체부의 입장 등을 종합해 다음주 초까지 공정위에 의견을 보낼 계획이다. 당초 공정위는 "향후 국무조정실의 조정 및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안건상정 등의 과정을 거쳐 개선방안을 연내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방통위를 비롯한 부처 및 단체들의 입장이 강경해 밀어붙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통위 관계자는 "당초 외주 의무편성 규제의 도입 취지는 독점체제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현행 규제는 존속해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며 "4기 방통위가 핵심 정책과제 중 하나인 외주 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되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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