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원조 코미디쇼,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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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원조 코미디쇼, 변해야 산다
'개그콘서트' 6월 3일 마지막 녹화... "달라진 미디어 환경 사회 분위기에 한계 노출"
무대 잃은 개그맨들은 유튜브로..."시대에 맞는 코미디로 변화 모색해야"
  • 김윤정 기자
  • 승인 2020.05.28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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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윤정 기자] KBS 2TV <개그콘서트>가 오는 6월 3일 마지막 녹화를 끝으로 잠정 중단된다.

지난 1999년 첫 방송된 <개그콘서트>는 2000년대 초반 35%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21년 동안 한국형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의 원조로 평가받으며 큰 사랑을 받아왔지만, 최근 2%대까지 시청률이 하락하는 등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 제작진은 “달라진 방송 환경과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 여러 이유로 새로운 변신을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종영’이라는 말 대신 ’휴식기’라는 표현을 썼지만, 언제 돌아올지는 기약이 없다. 3년 전 “휴식기를 갖겠다”며 떠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공개 코미디 붐을 일으키며 등장한 <개그콘서트>의 발자취는 곧 한국 공개 코미디의 흥망성쇠와도 같다. <개그콘서트>를 끝으로 지상파에서는 모두 자취를 감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유튜브의 부상과 '불편한 개그'가 통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최근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에 출연한 개그맨 황현희는 “유튜브나 팟캐스트는 점점 자극적이고 재밌어지는데 <개그콘서트>는 할 수 없는 게 많다”면서 “과거에 했던 ‘네 생일엔 명품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 같은 대사가 담긴 코너는 유튜브에도 올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대범 역시 “과거 박휘순 씨가 육봉달 캐릭터를 연기하며 ‘청둥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 같이 씹어먹으며~’라는 대사를 한 적이 있는데 청둥오리가 천연기념물인데 왜 때려잡느냐는 항의가 들어와서 북경오리로 바꾼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개그콘서트> ‘현대레알사전’ 코너에서 “더빙이란 목소리와 입 모양이 따로 노는 것”이라는 대사로 성우 비하 논란이, ‘사둥이는 아빠 딸’ 코너에서는 “새해에는 김치를 먹는 데 성공해 김치녀가 되겠다”는 대사로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다. 타국 왕족 희화화 논란에 신성모독 논란까지 겹쳐 프로그램 제목이 변경됐던 '만수르', 조선족을 희화화한 ‘황해’, 일본인을 희화화한 ‘멘봉스쿨’의 갸루상 등 인종차별 논란과 외모 비하 등 논란은 방송 내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달라진 대중 정서와 미디어 환경 사이에서 <개그콘서트>는 부진의 늪에 빠졌고, 시청자의 외면 속에 잠정 중단 결정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왕자 만수르를 희화화한 '만수르'는 한국석유공사의 항의를 받고 코너명을 '억수르'로 변경했다. 이후 억수르의 건방진 아들 '무함하다드'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결국 이름도 변경됐다. ⓒKBS
아랍에미리트 왕자 만수르를 희화화한 '만수르'는 한국석유공사의 항의를 받고 코너명을 '억수르'로 변경했다. 이후 억수르의 건방진 아들 '무함하다드'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결국 이름도 변경됐다. ⓒKBS

<개그콘서트>는 개그 꿈나무들에겐 말 그대로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KBS는 공채 개그맨 선발 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얼굴을 발굴했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키워내는 무대가 바로 <개그콘서트>였다. 박나래 장도연 이수근 김병만 정형돈 신봉선 유세윤 강유미 안영미 등 현재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는 많은 스타가 그렇게 데뷔하고 성장했다.

<개그콘서트>의 잠정 중단으로 개그맨들이 올라갈 무대도 사라졌다. 코로나19 여파와 <개그콘서트> 중단 등으로 올해 예정돼 있던 공채 개그맨 선발 계획도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로 코미디언 이용식은 통화에서 “당장 생계 문제 직면하게 될 후배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며 “공영방송이라면 당장의 수익과 시청률 보다 앞으로 방송가를 지탱할 인재들을 키워낸다는 책임감도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KBS는 <개그콘서트> 대신에 유튜브 채널 <뻔타스틱>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코미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 갈 예정이다.  개그맨들이 유튜브에서 자리를 잡은 사례가 적지 않아 <뻔타스틱>이 KBS 코미디의 새로운 둥지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용식은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면서 유튜브를 대안으로 이야기한 것은 유감”이라며 후배들을 향해서는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계속 트레이닝하면서 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웃찾사' 폐지 후 유튜브 스타 크리에이터가 된 '흔한남매'.
'웃찾사' 폐지 후 유튜브 스타 크리에이터가 된 한으뜸, 장다운이 운영하는 '흔한남매'.

공개 코미디의 장을 처음 연 KBS가 시대 흐름에 부합한 새로운 코미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은 안팎에서 나온다. 

KBS 한 예능 PD는 “<개그콘서트>의 휴식기 선언은 달라진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를 못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개그콘서트>가 돌아오든,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든 새롭게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웃음을 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담당 선임기자는 “늘 우리 곁에 있었던 트로트와 한물갔다 여겨졌던 경연 프로그램 포맷을 합쳐 새로움을 만들어 낸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며 “<개그콘서트>라는 오래된 틀을 벗어나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소구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 안에는 달라진 시대 분위기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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