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허항 MBC PD] 나는 싸이월드 세대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처음 만들었을 때, 무슨 사진을 올릴까 무슨 배경음악을 선택할까 무슨 글을 올릴까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상의 공간에서 누군가와 ‘일촌관계’가 된다는 개념도 참 신기했다. 생애 첫 ‘SNS’였던 셈이다.
그런 싸이월드가 지난 달 국세청으로부터 ‘폐업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경영난으로 인한 미납된 세금 축적이 이유였다. 싸이월드 측은 투자자를 찾아 가급적 운영을 계속하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아 보인다. 조만간 미니홈피 계정도 사라질 수 있으니, 빨리 사진들을 백업해놓으라는 조언이 들린다.
근 몇 년 만에 미니홈피에 접속을 해보았다. 싸이월드가 풍미하던 시절, 나는 나름 내 미니홈피를 열심히 꾸렸던 사람이었나 보다. 내 한 시절의 추억이 나름대로 촘촘히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노견이 된 반려견의 아기적 사진도 있고,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사진도 있다. ‘일기장’에는 20대의 치기어린 말투로 좌절과 자책, 굴욕과 같은 감정들이 가감없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게시판’에 제법 써놓은 자작시들은, 내가 한때 시인을 꿈꿨던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미니홈피에서 가장 애틋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여행사진들을 모아둔 ‘사진첩’이다.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부터, 1년에 한번 씩은 꼭 혼자 배낭여행을 갔었다. 연도별로 구분된 사진첩에는, 파리, 런던, 코펜하겐, 더블린, 도쿄, 뉴욕의 10여년 전 풍경이 담겨있다. 홀로 떠난 여행이었고, 지금처럼 ‘셀카’의 개념이 크지 않았던 때라, 거의 모든 사진은 나의 시선컷이다. 우연히 들어가 본 골목길 서점, 벼룩시장, 미술관, 어린이들...‘캐논 디카’로 찍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을 찍던 당시의 날씨와 냄새, 내 감정 상태까지 고스란히 기억이 난다.
미니홈피 시절 이후, 무언가를 그토록 열심히 기록해본 적이 있는지 새삼 생각해본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신없는 일상에 매몰된 채 사는 탓도 있고, SNS에 뭔가를 끄적이는 행위가 다소 치기 어리게 느껴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현재 대세 SNS인 인스타그램에는, 뭔가 정제되고 쿨한 것만 올려야할 것 같아 SNS 자체를 멀리하게 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기록되지 않는 일상들을 휘발시키며 보내고 있는 요즘, 싸이월드의 불투명한 미래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인생 중 가장 충실히 일상을 기록했을 수도 있는 미니홈피가 어느 날 갑자기 ‘주소를 찾을 수 없음’이라는 문구 뒤로 사라져버린다면, 그 허무함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클 것 같다.
현재 연출 중인 실제커플 연애 리얼리티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최근 합류한 치타-남연우 커플은, 왜 출연을 결심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 바람처럼, 그들의 연애 일상은 예능 프로그램의 문법으로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다. 훗날 이 영상은, 적극적 기록을 결심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2020년 현재 겪는 일상과 감정들을 다시 충실히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순간이든 아니든, 미니홈피를 꾸렸던 마음으로 일상의 흔적을 남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그 흔적들은 먼 훗날 다시 생생한 촉감과 냄새, 느낌으로 나의 한 시절을 재현해 줄 것이다. 미니홈피의 존폐 위기가, 아이러니하게 ‘기록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